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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Aug 04. 2023

완선언니가 좋았다.

연예인에(정확히 말하면 ‘덕질’ ‘팬심’ 같은 것)에 관심이 없다.

아이돌을 좋아하지도 않고, 특별히 좋아하는 배우도 없다.

물론, 정우성이었다가 차차 김우빈으로 변해가는 내 눈에 제일 멋진 남배우가 있기는 하다만, 그저 내 눈에 ‘멋진’이라는 것이지 그들을 보며 설레거나 떨리지는 않는다.

물론 눈앞에서 웃어주면 기절할 자신은 있다.      


다만 내 인생 통틀어 딱 한 명, 설레는 팬심이라는 것을 품어보았는데, 바로 완선언니.

김완선씨다.      



김완선씨가 데뷔했던 1986년에 나는 국민(초등 아니고 국민)학생이었다.

지금처럼 매체가 다양하지도 않았던 그 시절, 내가 연예인을 접할수 있는 매개체는 고작 14인치 컬러텔레비전(되게 옛날 사람같구나...) 뿐이었다. 그 안에서 예쁜 언니가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에 홀딱 반해버렸다.      

‘니 눈이 더 무섭다.’ 는 유행어 아닌 유행어를 남긴 데뷔곡 ‘오늘밤’부터 ‘나홀로 뜰앞에서’ ‘리듬속에 그 춤을’ ‘기분좋은 날’  ‘삐에로는 우릴보고 웃지’ 등 김완선씨의 모든 노래를 따라부르고 되도 않는 몸짓으로 꾸물꾸물 그의 브레이크 댄스를 따라 추었다.      


가수 김완선은 대중에게 댄스가수, 댄싱퀸으로 이름이 남아 있지만  ‘이젠 잊기로 해요.’ ‘애수’ ‘나만의 것’ 등 템포가 느린 곡은 숨겨진 명곡이기도 하다.

무대위에서 느린템포의 춤을 추며 그 노래를 부르던 김완선은 슬픈듯 아름다웠다.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화요일에 만나요> 같은 그 시절 예능 프로그램을 하는 날이면 1초라도 놓칠새라 10분 전부터 tv앞에 붙어앉아서 나의 완선언니가 나오기를 목을 빼고 기다렸었다. 

완선언니가 나오면 폴짝폴짝 뛰었고, 나오지 않으면 냅다 tv를 꺼버렸다.     

그뿐인가? 광고도 열심히 챙겨보았다. 광고모델로 완선언니가 나올수도 있으니까..;;;     

굉장히 많았었는데, 지금 기억나는 것은 ‘써니텐’과 ‘10만원 대 여성의류 센서스’ 정도이다.


(10만원대 여성의류 센서스라니. 이미 역사속으로 사라진 브랜드인데도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것을 보면 당시 카피라이터는 굉장한 분이다.)     



연애편지는 버렸어도 완선언니 브로마이드는 버리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완선 언니가 돌연 은퇴를 발표하고 사라졌다.

나중에 이것도 마케팅이었다고 들었으나 당시의 충격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었다.     


나의 별이 사라진 것이다. 좀 울었던 것도 같고....

     

이후 대만진출, 홍콩가수 알란탐과의 듀엣곡 발표, 임신, 출산 루머 등 좋고 나쁜 이야기들과 함께 완선언니가 매체에 등장했으나 전과 같은 존재감은 없었다.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 <탤런트>라는 곡을 들고 가수로 돌아왔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과 함께 조용히 사라졌다. 이후 간간히 방송을 하긴 했어도 가수로서의 존재감은 확실이 옅어졌다.           



완선언니가 돌아왔다.


댄스가수유랑단. 

    

이미지 출처: tvN 댄스가수 유랑단 포스터


방송을 챙겨보지는 않았지만 유튜브를 통해 간간히 만나는 김완선은 역시 김완선이었다.

끼야~~완선언니!!!!


여전히 늘씬한 몸, 화려한 무대와 달리 조용하고 얌전한 말투, 더욱 단단해진 노래와 춤. 댄스실력에 묻혀 저평가되었던 가창력까지 새삼 인정받고 있다. 

아름답다.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해 보인다. 인형처럼 예뻤던 그가 행복한 사람처럼 보였다.  




1980년대, 그 시절의 나는 완선언니를 닮고 싶었다. 

가까이에서 보지도 못하고, 음반하나 사지 못했지만 방송에 나올때면 그 앞을 돌처럼 지켰고, 혼자 노래를 따라부르고, 춤을 따라했었다.      


남자연예인과의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꿈꾸는 것 보다, 완선언니의 아름다운 몸짓을 닮고 싶었던 것 같다.      


굉장히 현실적인듯 하나 완벽한 비현실이다.     


남자연예인을 아무리 좋아해도 그와 이뤄질 수 없듯(정우성도 소지섭도 김우빈도 제 짝은 따로 있.....)

내가 김완선이 될 리가.     


요즘 들어 곱게 나이들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몸짓과 말짓이, 그리고 마음씀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현실은 살은 오르고, 뼈는 굳고, 덩달아 마음도 굳는 중이다. 



나의 유일한 연예인, 완선언니가 행복해 보인다.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고 있다.


닮고 싶다. 그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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