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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Aug 05. 2023

내가 어쩌자고 글을 썼을까?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어쩌자고 사랑했을까> 라는 제목의 드라마도 있었다.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가 먼저 나왔고 <우리가 어쩌자고 사랑했을까>는 나중에 나왔다.

전자는 시리즈이고 후자는 단막극이다.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와 ‘어쩌자고’ 사랑했을까는 딱 한 단어 차이인데 그것의 느낌은 너무나 다르다.    

정말 사랑했는지를 묻는 질문은 한 구석 쓸쓸하다면, 어쩌자고는 한편 처절하다.

  

어쩌자고.      


사랑하면 안될 것 같은데, 사랑을 해 버린 느낌이기도 하고.

왜 사랑하는지를 온 몸을 다해 증명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종종 묻는다.

나는 어쩌자고 이러고 있는가. 하고.     


다른 일을 했어도 잘 됐으리라는 보장이 없고, 어떤 선택을 하였어도 꽃길일 리는 없음을 훤하게 알고 있으나 그래도 하릴없이 묻는다.     


‘어쩌자고 이러고 있어?’     


무언가를 하고 있어도 하는 것 같지 않고, 쉬고 있어도 쉬는 것 같지 않은 것이 이름없는 작가 나부랭이의 삶이다. 그 와중에 얻은 것은 골병이다.      

먹는 족족 체하는 통에 먹기가 무섭고, 허리가, 골반이 뒤틀려 걷다가 비명을 삼킨다. 식은 땀이 흐른다.


그래도 노트북 앞에 앉아있겠노라고, 뭉쳐있는 어깨를 풀어보겠다고 폼롤러 위를 굴렀다.

어제부터 등짝이 아파도 너무 아프다. 욕실에서 살펴보니 폼롤러 자국을 따라 멍이 들었다.      



내가 참, 보잘 것 없다.


당연하겠지만, 모든 작가의 삶이 이렇지는 않다.   

                  

그래서 또 묻는다.     

‘어쩌자고 이러고 있는가.’     


그에 답을 하기 위해 그저 입 다물고 진득하게 그리고 지독하게 살아볼 참이다.

그러다 생이 다하면, ‘이러느라’ 그랬다고 독백이라도 하게.      

어쩌자고 사랑을 하든, 어쩌자고 글을 쓰든 말린다고 말려지는 것이 아니지 않나.

그놈이 혹은 그년이 혹은 그짓이 좋아서 그러고 살겠지.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초파리 한 마리가 집요하게 눈앞을 알짱거린다.

정작 눈알을 파먹지도 못할 거면서.

그저 알짱거리며 괴롭히는 것이 생의 목적인 것처럼. 하찮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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