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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Aug 07. 2023

음력 유월 어느 날.

어제 오후, 친구와 잠깐 통화할 일이 있었다.      


“어, 안 그래도 저녁때 전화하려고 했는데.”

“응? 왜?”

“내일 생일이잖아.”

“아.... 그거....음... 이제 내 생일이 아니라서.”

“그래서 오늘 저녁에 하려고 했지.”   

       



나는 늘 음력으로 생일을 챙겼었다. 핸드폰이나 도어락처럼 통상 네 자리로 이루어진 비밀번호는 내 음력 생일 날짜였다. 특별히 의미부여를 한 것은 아니고 조합할 수 있는 네 자리 숫자 중에서 나와 가장 오래 붙어 있던 숫자가 그것이라 그랬다.      


재작년 그날, 나는 무슨 원고를 붙잡고 끙끙대고 있었기에 하루 종일 신경이 날카로웠다. 입원 중인 아빠와 함께 병원에 있던 엄마가 전화를 해서는 미역국이라도 배달시켜 먹으라고 했었고, 알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굳이 그러지는 않았다. 하루 종일 굶다가 다 저녁에 샌드위치였나? 쫄면이었나? 무언가를 시켜 먹었던 것 같다.  

   

다음 날 아침, 아빠의 임종을 지켰다.      


제사는 망자가 떠난 날 자정을 기준으로 지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보통의 많은 사람들은 관습적으로 돌아가신 전날 밤에 제사를 지낸다. 따라서 내 생일은 아빠의 제사가 되었다.      


해마다 이맘때쯤 딸의 생일 미역국을 끓여주던 엄마는 먼저 떠난 남편의 제사준비를 하러 장을 보러 다녔고, 같이 과일을 고르고, 포를 고르는 딸이 은근히 딱한 모양이다.  

    

뭐, 사실 나는 괜찮은데?

그냥 신기한 일이다. 생각했고, 그야말로 애증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렸던 부녀사이가 생과 사를 달리하면서도 진득하니 붙어있는 천륜 그 자체를 증명하는 것 같기도 했다.     

평생, 잊지는 못하겠소. 아부지.      




긴 세월 잊지도 않고 생일 인사를 챙기는 친구가 고맙기는 한데, 이게 또 마냥 고맙다고 하기는 뭔가 애매한 기분이다. 농담처럼 투정처럼 이제 내 생일 아니라고 했더니 내년부터는 양력으로 챙기겠다기에 이제 그냥 잊어버리라고 했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일 뿐이고, 굳이 그걸 아득바득 챙겨 먹겠다고 양력으로 바꾸는 것도 우스운 일이므로. 그보다는 제사를 챙겨야 한다는 것이 여전히 낯설고 한켠 마음이 가라앉을 뿐이다. 


어느새 2년이라며 세월 참 빠르다 했더니, 친구가 말하기를 뭔가를 신경써서 챙기다 보면 그 시간이 금방 돌아오더라고 한다. 남편, 자식, 친정부모, 시부모....늘상 챙기느라 바빴던 주부의 한탄이다. 

     

뭐가 됐든 잘 살자며 통화를 마쳤다.           




20년도 더 된  옛날 사람의 생일파티 사진.

   

아마도, 생이라는 것이 내내 축복일줄만 알았던 시절의 여름이었을 것이다.  

사는 것이 당연했다. 빛나는 줄도 모르고 빛나고 다녔다. 



생의 이름에서 사의 이름으로 바뀐 날.

오랜 친구에게 못내 어색한 축하를 받으며 생일이고 뭐고 인생사 되는 일 하나 없다며 언제 이 지독함이 끝나냐며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내고 싶었다. 

사는 것이 버겁다고 하면서 사실은 잘 살고 싶었다. 

뜨거움이 한풀 꺾이면, 달리기부터 다시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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