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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Jul 28. 2023

우아하게 살기가 참으로 힘들다.

   

자동차 정기 점검과 엔진오일 교환, 에어컨 필터를 교환하기로 하고 정비 센터에 갔다.

예약은 두시 반이었으나 세시 십분에 작업이 시작되었다. 뭐, 바쁜갑지.

엔진오일을 교환 하는 작업이 시작되고, 여기저기 확인을 하는 것 같더니 리프트에서 차를 내린다. 이내 작업이 끝났다고 한다. 담당 엔지니어가 오셔서 ‘다 끝났습니다.’ 하길래 ‘에어컨 필터 작업도 하신 건가요?’ 하고 물었다. 필터 빼는 것을 못 봤는데?

엔지니어는 확인시켜 드리겠다고 하더니 멈칫 하고는 허둥지둥 새 필터를 가져온다.     


“바로 갈아 드릴께요.”          


???


까먹었나보군. 

창구 담당 직원엑게 결제를 하면서 에어컨 필터교환 비용까지 다 포함된거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그냥 결제하고 갔으면 몰랐겠네요. ’ 하고 물어보니 반드시 크로스 체크를 한다면서 정색한다. 

그렇다니 다행이다. 아무튼 얼른 결제하고 가려는데, ‘저희가 꼭 확인하는 것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라고 어색어색 미소지으며 강조한다. 제가 뭐라고 안 했습니다만?       




그리고 다음날, 도로를 달리는데 공기압 경고등이 켜진다. 

타 지역에 와 있는 터라 센터로 다시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혹시 펑크가 난 건 아닌가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이리저리 살펴봐도 차량에 문외한인 내 눈엔 그 바퀴가 그 바퀴 같다. 아닌가? 이쪽이 좀 내려앉은 것도 같고....?

약속이 있으니 거기서 더 지체할 수가 없어 일단 차를 몰아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결국 보험회사에 긴급출동을 요청해 확인했는데 펑크는 아니고 타이어 공기압이 많이 낮은데 점검 한 지 오래되셨냐고 묻는다.      


“어제요.”

“......허허..”     


출동한 기사님이 무언가를 해 주고 가면서 운행을 하면 경고등이 꺼질 것이라 했으나 재운행을 해도 경고등은 꺼지지 않았다. 일단 어딘가 터진 것은 없다고 했으니 죽기야 하겠는가 하는 심정으로 남은 일정을 마치고 켜진 경고등을 내내 찜찜하게 바라보며 고속도로를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검색해 본 결과 내 차는 리셋버튼을 눌러야 경고등이 사라지는 모양이다. 그냥 눌러서 없애려다가 미세하게 새는 것이라면 장비로 확인해 봐야 할 것 같고, 어제 지면에 돌이 있는 것을 모르고 넘다가 어딘가 세게 부딪히는 소리가 났던 것이 불안하기도 해서 겸사겸사 확인해 볼 겸, 다시 센터를 찾았다.      


역시나 두 시 반까지 오면 바로 봐준다고 했으나 시작 시간은 세 시 반이다.

엔지니어들 누구 하나 놀고 있지는 않으니 넘어가자. 


타이어 점검 결과 별다른 이상이 없고, 돌에 부딪힌 부분은 그저 긁힌 거라 운행에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굳이 안 봐도 된다고, 괜찮다고 했는데도!!!!!!!  리프트 아래까지 나를 데리고 가 확인을 시켜주었다.      

제가 이런 기계 아래에 서 있는 것을 굉장히 무서워합니다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누군가의 일터 아닌가.)    

 

“그런데 왜 경고등이 들어왔었을까요?”

“.... 지금은 문제가 보이지는 않는데 또 문제가 생기는지는 좀 지켜 봐야 될 것 같습니다. 사람처럼.”     


사람 고쳐쓰는 거 아니라던데, 그나마 차는 고쳐 쓸 수 있으니 다행인 부분이군요.      

     



이러한 과정 안에서 나는 짜증이나, 싫은 소리, 항의를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최초 에어컨 필터 빼먹은 상황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경고등 점등, 약속시간보다 한시간이나 늦게 시작한 일 등. 짜증을 내자면 얼마든지 낼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최근, 굳이 이곳에 옮기기 싫은 어떤 상황을 거치고 난 후에 나는 나를 ‘우아하게 키우기로’ 마음 먹었다. 나의 부모님은 나름 애를 썼겠지만 나에게 우아한 삶을 주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결핍이 많고, 화도 많다. 그렇다고 내가 아무 데서나 버럭질을 하는 인성파탄은 아니다.

화는 많은데, 성향은 소심해서 내 안에서 삭히다가 곰삭은 화를 날려버리곤 한다. 

(당연히 마냥 참지는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태생이 화가 많고 성장과정에서 제대로 감정을 품고 날리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은 사실인지라 삶은 평온하지는 않았고, 지금도 편치않다.     

그러나 부모의 손을 떠나다 못해 늙어가는 이 상황에서 부모 탓을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육아하는 마음으로 나를 돌보기로 했다. 

곱게, 우아하게 나를 '키우려' 애쓰는 중이다.        


        



카센터에서 돌아오니 이미 늦은 오후였다. 배는 고픈데 입맛도 싹 달아났고 애꿎은 아이스커피만 들이부으니 배만 아프고, 조금 앉아있다가 집으로 향했다.


우리 집은 낡은 연립이다. 

좁은 도로를 끼고 있는데 불법주차 차량들 때문에 입구쪽이 늘 번잡하다.


멀리서 차 한 대가 다가오는 게 보여서 좌측으로 갈 것이라는 신호를 했다. 서로 마주치면 누구 하나는 후진을 해야 하는 상황이니 미리 신호를 주어 잠시 멈추라는 뜻이다.

상대 차는 내 신호를 알아보고 차를 멈췄다. 집 주차장 출입구에 거의 다 와서 왼쪽으로 들어가려는데 애매하게 출입구를 막고 서 있는 차가 움직이지 않는다. 보통 저런 각도로 서 있으면 앞으로 빠져나오는 과정일텐데 왜 저러지??     


내 뒤로도 차 한 대가 내려오고 있고, 내 신호에 멈춘 차는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마냥 서 있을 수도 없어서 일단 출입구 쪽으로 차를 붙여 길을 뚫었다. 거의 끼우듯 바짝 붙었으나 안쪽으로 들어갈 공간은 나오지 않았다.      


당연히 입구를 막은 차가 움직일 줄 알았으나 요지부동.

가까이에서 살피니 운전자가 없다. 

설마 이거 주차냐???     


뒷좌석에 노인 한 명이 타고 있다.

창문을 내리고 ‘차 안 빼세요?’ 물어보니 ‘우리가 댈 자리에 다른 차가 있어서 못댄다’는 황당한 답이 돌아온다. 


뭐라구요?     

         

그러니까 이런 상황이다.

슈퍼에 물건을 사러 가야 하는데, 수퍼 앞에 다른 차가 한 대 주차중이다. 그 자리에 대고 물건을 사서 가야 하는데, 그 자리에 다른 차가 있으니 댈 수가 없다. 그래서 출입구를 막고 주차를 하였다.    

  

??????????     


이런 상황에서 차 안에는 내려서 일행에게 알릴 의지도, 본인이 운전석에 앉을 의지도 없는 노인 한 분 뿐이다. 그러니 클락션을 울려 운전자를 호출할 수도 없다. 노인을 앞에 두고 빵빵 거리면 적반하장으로 내가 가해자가 될 판이다.  


뒤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려고 해도 그 좁은 차도로 차들은 계속 지나다니고 있는 상황이라 섣불리 후진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때, 배달 오토바이 한 대가 안쪽에서 나오다가 길이 막혔다. 잠시 기다리는 듯 했으나 입구는 뚫릴 기세가 없다. 내 쪽을 바라본다. 왜 안 들어오냐는 눈짓이다.


어떻게 들어가냐? 오른쪽은 주차금지 방지석, 왼쪽은 길막차. 길막차와 내 사이 공간은 겨우 5cm 남짓. 내차를 긁거나 이 차를 긁을 판인데. 


그제야 오토바이도 앞 차에 운전자가 없는 것을 파악했는지 인상이 구겨진다.  

경적을 울렸으나 묵묵부답. 

이런 상황이다. 


이러한 기괴한 상황에서 시간만 흐르고 있다. 

오토바이에 올라탄 라이더는 짜증과 안절부절. 결국 내가 차가 오지 않는 짧은 틈에 후진을 해서 오토바이를 먼저 내보냈다. 그리고 내가 들어가려는 순간, 일행이 나나타났다. 근데 무려 셋이다. 그 중 하나도 차 안에 남아서 수습할 생각이 없이 노인 하나 덜렁 남겨놓고 주변 교통상황이 어찌 되든 말든 우르르 몰려가서 수퍼에서 물건을 사고 있었던 것이다. 유유히 차에 물건을 싣고 있다. 


도저히 그냥 넘길 수가 없어 차 문을 열고 내려서 지금 뭐하시는거냐고 따져 물으니 ‘미안해요. 저 앞에 차 때문에 우리가 댈 자리가 없어서.’ 하는 말을 똑같이 반복한다. 


“아무리 그래도 입구를 막으면 어쩌자는 거에요?”

“아, 미안해요.”     


그런데 난데없이 뒷자리 할아버지가 버럭 질이다. 


“앞에 차가 있어서 여기 댄거라고!”      


뭐라고???      

참고로, 3미터만 후진하면 상가 주차장이 뒤편에 있다. 그럼에도 수퍼 앞에 차를 세워두고 물건을 사서 떠나야 하는데 그 자리에 다른 차가 막고 있으니 그냥 입구를 막고 세웠다는 논리다. 앞차가 잘못이지 자기들은 잘못이 없다는 것.     


“아니, 운전하시는 분이 개념이 없어요?”

“아이~씨! 개념이 없는 게 아니라 앞에 차가 있어서 여기 댔다니까 뭘 자꾸!!!”     


노인이 등판하셨으니 이제 나의 '싸가지'를 재판할 차례이다.

그런데 전혀 미안하지 않은 얼굴로 미안하다고 말하며 운전석에 올라타는 여자가 한마디를 보탠다.     


“화낸다고 달라질 것 없으니까, 그만해요. 그래봐야 본인만 화나요. 그쪽만 손해야. 그만해애~”     


뭐지? 이 참신한 버르장머리는?     

아마도 이들은 내가 막 들어오려다가 못 들어와서 화를 낸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대수롭지 않은 일에 뭘 그렇게 빡빡하게 구냐는 투다. 

그런데 이 상황은 34도에 육박하는 더운 날씨, 가만히 있어도 싸움 나기 딱 좋은 여름 땡볕에서 몇 분간 움직이지도 못하고 발이 묶여 있던 상황이다.

그나마 내가 비집고 들어와서 교통흐름을 막지 않은 것이나, 위험을 감수하고 후진을 해서 오토바이를 먼저 보내주지 않았으면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을 것이다.    

  

이 상황을 다 보고 있으면서 그저 입 꾹 닫고 앉아있던 뒷자리 노인이 적반하장으로 ‘어디서 감히 어린 것이 화를 내느냐.’를 시전하려는 몰염치 앞에서 ‘우아함’의 다짐 따위!     


그런데 그 순간 현자가 등장하셨다.      


화낸다고 달라지지 않아요. 화내면 너만 손해세요.           

                                   

주차매너는 개판이었으나 마인드는 현자시었다. 그런 마음으로 남이야 피해를 보든가 말든가 그 따위로 주차하고 사라지셨나보다.


나는 진심으로 우아하게 살고 싶다. 

그러나 우아함을 지키는 것이 뻔뻔함은 아니니 정체성 분명히 해야겠다. 

화를 부르지 않으려 애쓸 것이지만, 나도 굳이 타인을 위해 도움을 주지도 않을 생각이다.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교통 흐름이 어찌 되든 말든, 배달라이더가 갇혀서 울던 말던 나는 꼼짝하지 않겠다. 인류애 바사삭이다.       

    



삶이, 이렇게 지랄맞다.

그러나 나는 우아하게 살기로 하였다. 

여전히 뚱땅거리지만 육아가 어디 쉽나. 

애를 키우지 않아도, 나를 다시 키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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