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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Jul 04. 2023

무직입니다. 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고백하자면 그렇게 열심히 쓰지는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머리도, 마음도 굳었다.     

창작하는 사람이 마음이 굳으면, 회생이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제가 무직입니다.’ 라고 하기는 싫어서 부득불 ‘무명작가’ 라고 했다.

정체성이 헷갈릴 즈음 <원고료>라는 것이 통장에 찍히니 진심 무직이라고 하기도 그렇다.  


   



작업실 욕실 세면대에 작은 문제가 생겼다.     

검색해보니 ‘수전 밸브’ 라고 하는 부품이 고장인데 내 힘으로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미련하게 혹시나 하는 기대로 이리저리 돌려대다가 손가락에 상처가 났다.     

피를 보고서야 미련한 짓을 멈췄다.

주인에게 전화하기 싫어서 혼자 해결해 보려고 했는데 역시 안될 일이다.     

주인아저씨는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오래돼서 그렇다면서 연구해 보겠다고 하고 떠났다.     

뭘 연구하나? 부품을 사 와서 직접 갈든지, 사람을 불러서 고치면 될텐데.

아마 돈을 덜 들이는 방법을 찾으려는 모양이다.

여튼, 내 몫은 아니므로.      

3년쯤 이 집에 살고 있는데, 알뜰한 분이기는 해도 안 고쳐주고 버틸 분은 아니니 연구가 빨리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바로 주인에게 전화하면 될 일을 나는 왜 미련하게 비틀다가 손을 다쳤을까?          

또, 또 집중하기 싫어서 엉뚱한데서 힘썼구먼.     

쓴웃음이 난다.                    



얼마 전 유퀴즈에 김연아씨가 (선수라는 표현이 익숙하지만 이제 은퇴했으니) 출연했다.

밖에서 보았을 때는 드라마틱할 것 같은 모든 과정들이 정작 본인은 직업적으로 해야 일을 열심히 했을뿐 이라며 이제는 더이상 숨차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고 했다.      


숨이 차도록 해 본 사람이 담담하게 밝히는 소회가 그렇게 멋지고 괜히 부러울 수가 없었다. 



2주 정도 요가 수업을 쉬었다. 허리 통증이 잦아들지를 않아 굳이 무리하려 하지 않았다.

오늘은 좀 견딜만 하니, 게다가 마침 비도 오니 요가수업을 갈 참이다.     

그 사이 시간이 잠시 떠서 맥락 없는 글을 쓰는 중이다.    

 

다친 손가락을 바라보면서 나 혼자 혀를 찬다.     


“그러라고 있는 손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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