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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Jul 04. 2023

아낄 것은 따로 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던 루틴이 깨져버렸다.


오전 5시~6시 사이 기상.

가볍게 호수를 한 바퀴 돌고 작업실로 나오는 것.

꼬박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

하루의 마무리는 동영상을 보면서 스트레칭을 하고 잠자리에 드는 것.     

딱히 대단할 것도 없는 일상이지만, 이 정도는 지키고 살고 싶었고, 그렇게 살고 있었다.      


이 루틴이 깨진 것은 엄마와의 감정적 충돌 때문은 아니었다. 

솔직히 내내 억울하고, 화도 나고, 왜 하늘 아래 내 편은 하나도 없을까? 답없는 한탄도 했다. 

그러나 이미 칠순을 넘긴 엄마를 상대로 내 입장을 완벽하게 이해시키는 일, 내 속이 후련하게 털어버리는 일은 불가능 함을 냉정하게 내가 이해했다.

설사 모든 것을 탈탈 털어놓고 무엇이 옳았고, 무엇이 그르고를 이야기 한다고 한들, 이미 흘러간 과거는 바뀌지 않을 것이고 내 속이야 시원하겠지만, 노인네의 서러움은 또 결국 내 몫 아니던가.      


그러니 언제까지고 그 따위 기분에 휩싸여 현재의 나를 망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더 철저하게 루틴을 지켜가며 내 일상을 지켜내고 있었다.

일찍 일어나서 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10분 거리의 호수에서 한바퀴를 걷고 반바퀴를 뛰었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작업실로 나섰고, 글이 되든 말든 책상 앞에 앉아 하루를 보냈다. 모두가 잠든 밤에 거실에서 스트레칭을 하였고, 조용히 잠자리에 들었다.           




고작 커피 한잔 때문이다. 

난데없이 단 것이 당겼는데, 평소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터라 당장 먹을 수 있는 달달한 간식이 없었다. 이미 시간은 밤 11시. 뭘 사러 나가기엔 늦은 시간이고, 귀찮기도 했다. 그때 생각이 미친 것이 하필이면 믹스커피였다. 일년에 서너번 먹을까 말까 한 것인데 그날따라 운명처럼 눈에 들어왔다.      

믹스커피 두 봉을 뜯어 물에 타고 유유도 넣었다. 그리고 얼음을 듬뿍 넣었다. 



요 커피믹스 두봉에 우유 조금 그리고 얼음 넣어 마시는 조합은 '꿀조합'이다. 


달달한 커피를 마시니 드디어 기분도 달달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뭔가 뒤끝이 찜찜한데? 분명 달달한 것이 맛은 있는데 묘하게 불쾌한 이건 뭐지?   

뭔가 속에서 욱? 하는데.....버릴까? 아냐, 기껏 만들었는데 아깝잖아. 뭐, 괜찮겠지. 


양치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속이 뒤집어지기 시작했고 배가 부풀어 올랐다. 배가 아프긴 아픈데, 통증이라기도 뭣한 그렇다고 위경련은 아니고.....     


결국 새벽 1시부터 5시까지 누웠다가 토하다가를 반복했다.     


아. 힘들고 드러워. 

차라리 기절했다가 깼으면 좋겠다 싶었다. 

뒤처리는 그 때의 내가 어떻게든 하겠지.      

아무튼, 겨우 숨을 돌리고 나니 이미 해가 뜰 시간이었다.   

일요일 밤에 벌어진 이 사건으로, 어제는 하루 종일 두통과 울렁거림에 시달리느라 컨디션은 바닥을 찍었고, 오늘까지 빌빌거리는 중이다.          




세상에 내 편 하나 없는 것 같은 외로운 기분이 짙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일이다. 어느 곳이든 완벽한 내 편이 있기는 한가.

엄마가 내게 완벽한 응원을 보내주지 못했다고 억울해 했지만, 나는 뭐 완벽한 자식이겠는가.

그러니 누구도 일방적으로 잘못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삶은 더하기 빼기 해서 제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서 각자의 상처는 남아있는 것이다. 

그것은 또 각자의 몫이니 제 앞가림이나 하면 될 일이다. 

우선 나부터.           


나는 나에게 인색했다.

타인에게 한 작은 실수에는 과하리 만큼 마음이 쓰였지만 나에게는 그러지 못했다.

나의 시간을 방치했고, 나의 몸을 외면했다.      


밤늦게 들이부은 커피 한잔이 이런 꼴을 만들고 나니, 몸이라는 것은 지독하게 정직함을 알았다. 내 몸은 ‘언제고 돌려 줄테니 고따위로 해보시든가?’ 하고 벼르고 있었나 보다.   

    

나는 유리멘탈을 가졌다. 

어찌나 쉽게 깨지는지, 아기 다루듯 조심히 다루어야 하는 녀석이다. 

그래서 변수가 생기는 일을 최대한 줄이는 편이다.

가능한 사람을 안 만나기도 하고, 연락을 끊어버리기도 한다.     

나름의 사는 법이 있는 것이니 이것은 나의 생존법이다.      

이젠, 몸에 영향을 미칠 변수도 줄여야 할 모양이다.      



태생이 없이 살아 그런가 사소한 것에 발발 떠는 편이다. 

쿠폰을 놓치면 씩씩거리고, 가격비교에 진심이다.

자동차 보험 마일리지 때문에 연간 이동거리를 계산해서 맞추느라 애쓰는 나를 발견한다.

아, 솔직히 내 모습이지만 재미없다.


그러면서 내 마음과 몸에 대해서는 참으로 헤펐다. 

아끼는 법이 없이 마구 쓰고는 괜찮거니, 믿거니 했다.



야밤에 커피믹스 두봉이라니.

그것도 만성 위장병 환자가. 

언감생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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