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 빅맥세트, 식빵 두 장에 딸기쨈 듬뿍, 물냉면과 튀김왕만두 3개, 밥 한공기 꾹꾹 눌러 담아 왕갈비탕에 말아먹기, 과일, 아이스크림, 고구마, 사이다, 생라면...
며칠 동안 끝없이 먹었다.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푸는 편은 아니다. 살은 쪘지만 식탐이 많은 편도 아니고, 먹는 양이 많지도 않다. 그러니 저 많은 음식들을 뱃속으로 밀어 넣는 것이 괴로웠다.
꾸역꾸역 목 안으로 차오르는 기분을 참으며 꼴깍꼴깍 넘어오는 음식물을 되새김질하듯 밀어넣었다.
이런 마음이었다.
<살쪄서 힘들다고 했었지? 그런데 살을 빼기 위한 절제와 운동, 그런 건 아무것도 안 하고 싶지? 그럼 그냥 마음껏 먹어봐. 어쩌면 그쪽이 더 행복할지도 모르잖아.>
효과는 놀라워서, 이틀 만에 2킬로가 불었다.
퉁퉁 부은 얼굴에 눈은 파묻혔고, 배는 부풀어 올라 숨쉬기가 힘들 정도였으며 걸음마다 맞닿은 허벅지가 서로 쓸리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또 한 번 인생 최대 몸무게를 갱신하였다.
한참을 울었다. 뚱뚱해서 울었냐면, 그건 아니다.
이토록 치기 어린 자학으로 내가 얻는 것은 무엇인지, 겨우 음식을 밀어 넣으며 스스로 면죄부를 주는 꼴이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본질은 외면하고 쌩까고 있으면서 겨우 이걸로 퉁치자고?
살만 빠지면 다 될것 처럼 굴지만, 사실 <성공한 작가> 였다면 내가 얼마나 뚱뚱한들 신경도 안 썼을 것이다. 나는 나에게 관대하니까.
나는 백마탄 왕자님을 기다렸나보다. 그러니까 어느 날 어떤 존재가, 그 어떤 기적의 순간이 나의 괴로움을 한방에 끝내주고, 나의 결핍을 채워주며, 모든 고통과 번뇌를 날려주며,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를 기다리나? 그래서 왕자님이 없는 나는 아무것도 하지않고, 어차피 내 노력은 소용없다며, 이미 끝난 일이라며 수시로 자빠지고, 수시로 울기만 하였나?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백마탄 왕자님을 기다릴것이라면, 최소한 마구간 정도는 갖고 있어야 ‘거기, 왕자. 내 마구간에 말 묶어두고 나랑 라면 먹고 갈래요?’라도 할 것 아닌가.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느라 귀한 시간을 쓰고.
가망 없는 기대에 마음을 두느라 상처를 받고.
그래서 차곡차곡 오늘을 망쳤다. 그러다가 결국 <예상대로> 망해버린다.
이 무한 반복이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들었음을 뻔히 알면서도 쉽지 않은 것이 사람이다.
애쓴다고 해도 달라질 것이 없고, <기초생활수급자>로 늙어서 외로이 고독사를 맞이할 것이라는 극단적 공포를 상상하면서 나는 그저 음식만 밀어넣었다. 무엇을 해도 달라질 것 같지 않아 손 놓고 있겠다는 비겁함이 <예상대로> 그렇게 될 것임을 알면서도.
다만, 가만히 있어도 행복하지 않다면, 꾸역꾸역 살을 찌워도 행복하지 않다면, 무명작가의 하루하루가 지겹고 무겁다면, 그것이 즐겁지 않다면 ‘하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아무것도 못(안)하는 지금이 행복하지 않으니까.
물론 확신은 없다. 하루 중 긍정의 순간보다는 부정의 순간이 더 길며, 난데없이 눈물이 쏟아지고 대책없이 억울하고, 그저 막막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이, 이토록 ‘실패’에 천착하는 것이 더욱 괴로워서 그만하기로 했다.
오래된 책을 다시 펼쳤다. 이미 늦었으면 뭐 할수 없지만, 아무것도 안 해도 늦은거니, 내가 한다고 뭐가 더 나빠지기야 하겠는가.
혹시 그러다가 기적이 일어날수도.
연재 중인 글은 완성이 되면 한 번에 올릴 생각입니다.
잡담은 조금 멈추게 될 것 같습니다.
괜찮지 않아서 방치와 학대(?)를 해봤더니 더 괜찮지 않더군요.
그냥 괜찮지 않은 채로......뭐, 하는 거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