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과 오늘, 정리를 좀 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새해라고 해도, 별반 다를 게 없는 하루하루라 큰 의미부여는 하지 않는 편입니다.
다이어리를 펼쳐놓고 새해 다짐을 하거나, 창대한 계획을 세우지 않습니다.
인생이 어디 계획대로 되던가요?.^^;;;
그보다는 늘 ‘당장’을 사는 일에 서툰 사람이라 계획보다는 당장의 실천이 지상과제입니다.
따라서 대단한 결기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눈앞의 풍경이 묘하게 거슬려서 치워버리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일의 시작은 그저 머릿속은 폭탄인데, 게으른 몸이 움직이지 않는 인지부조화가 부른 단순노동에 대한 갈망이었습니다.
일단 새해 첫날인 어제, 이렇게 한보따리를 버립니다.
사진에 보이는 것들은 일부일 뿐, 아래로 박스가 하나 더 있고 이미 꽉 채워져 있습니다. 대부분은 습작이지만 참고 자료도 많습니다. 하나하나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툭툭 버리는 짧은 순간에 ‘아, 내가 이런 것도 썼었구나.’ 싶은 것들이 나오기도 하더군요. 지금은 손목이나 손가락이 아파서 못 하지만 예전에 저는 초기 아이디어를 노트에 적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트가 제법 많았습니다. 재활용 쓰레기로 내놓으려 스프링 노트를 한 장 한 장 북북 찢어대고 있자니 웃음이 피식 납니다. 그러다가 번뜩 깨달은 바가 하나 있는데, 저는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계속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수 없이 반성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름 야심차게 준비한 <이야기> 들을 끝내 마무리 짓지 못하고, 통렬히 다음을 기약하지만, 또 슬그머니 핑계에 매몰되는 일의 무한반복입니다. 노트 중간중간에 그런 <반성>의 흔적들이 보이더군요. 참으로 일관되게 게으르고 겁이 많습니다.
뭐, 이렇게 버린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오래전에 미완의 습작들만 한 두어 박스 버렸는데 이번에 버린 것들은 그때 차마 버리지 못하고 남겨둔 것들입니다. 아마 그중 소중한 기억이 담겼거나,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내가 이랬지> 하며 돌아보고 싶어서 남겨 두었던 것들이었을 것입니다.
치기 어린 청춘과, 농익어가는 시간과 비례하는 좌절, 그럼에도 서툰 희망, 마음 저린 시절인연.
오늘은 작업실에서 같은 짓을 반복했습니다. 이건 비교적 최근의 흔적들인데 역시나 <미완>인 채로 자리만 채우고 있던 것들입니다. 그냥 다 버렸습니다.
음, 글을 그만 쓴다거나 새롭게 시작한다거나, 그런 대단한 의미부여로 시작한 <의식> 같은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눈에 거슬려서 시작했고 하다보니 오랜 시간 머뭇거렸던 시간을 이쯤에서 버려주는 것도 좋겠다고, 마음이 그렇게 가더라구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40년+몇 년을 더 살았지만 늘 알면서도 쉽게 히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얽힌 실타래가 눈앞에 있을 때, 차분히 풀어내는 게 제일 좋지만 그게 영 어렵다면 어느 시점에서는 그냥 잘라 내는 게 맞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실 끝끝내 붙잡고 풀어내려 하는 쪽이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손톱에 부러지기도 하고, 실타래에 쓸려 피가 나기도 했습니다. 물론 오랫 동안 매달리다 보면 풀리기도 해요. 그런데 그렇게 매달려 끙끙거리고 애쓰는 동안, 소중한 무엇인가를 많이 놓쳤습니다. 끝내는 손만 다치고, 결국 풀리지 못한 것들이 더 많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고 존경했던 작가님과 함께 공부했던 흔적들, 좋았던 친구가 남겨준 선물, 며칠 밤낮을 세워 썼던 습작들을 모두 버렸습니다. 다시 읽어보지 않을 것을 알기에, 내게 그만큼의 시간이 이제는 없음을 알기에 끝내 잊혀짐이 될, 미완으로 남은 엉킨 실타래는 끊어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머뭇거림을 버려야 했습니다.
얼마간은 이곳에 흔적을 남기지 못합니다.
주제도 없고, 일관성도 없고, 딱히 매력적이지도 못한 마구잡이 일기장 같은 공간이지만, 그런 서툰 글쟁이의 서툰 글을 읽어주신 분들 덕에 눈물을 씻은 날이 더 많습니다.
여러분의 건승과 행운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