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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Dec 29. 2023

이토록 미련한, 쉰 맛 나는 삶이라니.

        

최근 건강 문제 때문에 먹고 마시는 것이 많이 조심스러웠다. 생존을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몇 달 사이 응급실 나들이 몇 번 하고 나니 알아서 ‘납작 엎드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곧 ‘배를 쨀’ 예정이기도 하고. 




나는 요즘 커피를 거의 끊었으며 야식을 하지 않고, 과식도 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깨달은 바가 있었으니 ‘스스로 나를 너무 믿지 마라.’ 였다.     

워낙 어릴 때부터 커피를 좋아했고, 입에 달고 살았다. 종류도 가리지 않아서 아메리카노, 라떼, 믹스커피, 캔커피까지 커피라고 생긴 것은 모조리 좋아했다. 또한 커피를 마시고도 쿨쿨 잘도 잤다. 그러다가 최근 몇 년 사이 꽤 심각한 불면증이 생겼는데 나는 그때마다 ‘카페인’ 탓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렇지 않겠는가? 커피를 마셔도 쿨쿨 잠만 잘 잤으니. 근데 최근의 몸상태 때문에 커피를 끊고 보니 불면증이 사라졌다. 음, 카페인 탓이 맞는 것 같다. 믿지 마라, 나 자신. 


또한 배고프면 못 자는 줄 알았다. 객관적으로 먹는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빵 한 조각, 떡 몇 조각, 음료수 한 잔, 간혹 커피라도 한잔 마셔야 잠이 들었다. 그러나 안 먹고도 잠만 잘 자고, 공복상태가 그리 괴롭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역시 세상에 믿을 인간 없다더니, 역시 나부터 의심해야 했다. 


실생활에서 나를 만나고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나에게 종종 속는 지점이 있는데 그들은 내가 보기보다 굉장히 ’멍청’ 하다는 것을 잘 모른다. 솔직히 나라는 인간이 아는 것보다 더 아는 척 하는 허세 덩어리인데다, 말투나 표정이 날카로운 것에서 생긴 착시현상이다. 이것은 일종의 숨은 비밀 같은 것이니 나만 알고 있으면 좋겠지만, 혼자 알기엔 너무나 멍청해서 오늘은 나의 멍청력을 쩌렁쩌렁 자랑하려고 한다.    




근 한 달 이상 음식조절을 하다 보니 적게 먹는 것에 익숙해져서 공복상태가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다만 ‘자극적’ 인 음식들에 대한 욕망이 때때로 나를 지배하곤 한다. 부드러운 죽이나, 밥 반공기와 밋밋한 반찬들, 만두가 들어가지 않은 떡국, 풀만 가득한 샐러드 등이 신물 나고 지겨운 것이다.   

  

엊그제였다. 기름진 음식이 문제인 것이지 사실 맵고 짠 것은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고 배달앱을 켜서 떡볶이를 시켰다. 혹시나 소화에 부담이 될 수 있으니 배달 온 음식을 3등분을 해서 하나는 그릇에 옮겨 담고 두 개는 밀폐용기에 담아 냉동실에 넣었다. 천천히 떡볶이를 먹었다. 이 맵고 달고 감칠맛! 세상 친절한 악마의 맛이라니. 배가 살짝 부글거리기는 했어도 다행히 큰 탈은 나지 않았고, 나는 나의 머뭇거림 없는 직진, 적절하고 단호한 선택이 무척이나 뿌듯했다. (뿌듯이란다. 어이구.)


그리고 어제, 점심때가 지나로록 밥을 먹지 못했는데 딱히 먹을 것이 없었다. 편의점에 가서 뭐라도 사와야 하나 싶었지만, 그건 또 귀찮고. 냉동실에 든 떡볶이가 생각났지만 이틀 연속 자극적인 무언가를 뱃속에 때려넣기는 괜히 죄스러웠다. 배달음식이 비용적으로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인생사 크게 즐거움도 없는데, 이틀연속 배달앱 플렉스라도 좀 해 줘도 되지 않을까 합리화 하며 또 다시 배달앱을 켰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요즘 나는 오롯이 나에 대한 복종을 욕망한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므로 간절히 욕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셀프복종 중이다. 네네, 주인님.)     


선택은 샐러드와 키토김밥(밥대신 계란으로 싼 김밥)이다. 

키토김밥 (이미지 출처 : 구글.)


배달최소금액을 맞추려니 이런 조합이 나온 것인데, 샐러드는 하루 정도 냉장고에 두어도 된다고 생각했고, 김밥은 그때가 점심이었으니 혹시 남으면 저녁에 마저 먹을 생각이었다. 나에게 완벽히 복종하겠다는 굴종의 마음 대비 식욕이 폭발하지는 않아서 샐러드 3분의1 정도, 김밥도 딱 그 정도만 먹었다. 더 넘어가질 않았다. 그리고 뼈마디가 쑤셔서 생각보다 일찍 일정을 마감하고 집으로 갔으니 남은 음식은 고스란히 냉장고에서 하루를 잤다.     


그리고 오늘, 작업실에 나오자마자 어제 남겨둔 샐러드를 먹었다. 아침부터 김밥을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지금은 겨울이니 키토김밥정도는 조금 두었다가 먹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멍청하게.     


그렇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멍청하다. 키토김밥은 주재료가 계란이다. 계란이라니. 온통 계란이라니. 이보다 상하기 쉬운 재료가 어디 있다고 그것이 무탈할 것을 믿었나. 더구나 내가 시킨 것은 <크래미 마요 와사비 키토김밥> 이었다. 크래미? 게맛살이다. 마요? 마요네즈. 계란과 게맛살과 마요네즈를 범벅한 김밥을 하루 묵혀서 먹은 것이다. 그렇다. ‘먹은’ 것이다.     


오후 두시쯤이 되자 배가 고팠다. 물론 오늘은 배달앱을 켜지 않았다. 냉장고에 고이 모셔둔 김밥을 먹으리라 아침부터 결심하지 않았나. 김밥 열 개중에서 여섯 개가 남았고, 남은 여섯 개는 두 개씩 겹쳐서 위 아래로 두 줄이 놓여있었다. 첫 번째 김밥을 먹었다. 음.. 뭔가 이상한데? 아닌가? 두 번째 김밥을 먹었다. 괜찮네. 다행이다. 세 번째 김밥을 먹었다. 음???? 


그렇게 윗줄을 비웠고 아랫줄에 젓가락을 대는 순간 주르륵 물이 흘렀다. 응??? 그 와중에도 아무 생각 없이 입안으로 김밥을 넣는 순간, 쉰 맛이 확 올라왔다. 상대적으로 습기가 덜한 윗줄의 김밥과 달리 고스란히 습기를 머금은 아랫줄의 김밥은 이미 부패한 것이다. 애매했던 윗줄의 김밥이라고 무사할 리가 없었는데 ‘멍청한’ 나는 갸웃거리며 이미 세 개를 먹어버렸다.      


입안에 든 김밥을 뱉어내고, 한참동안 양치질을 했지만 쉰맛은 가시질 않았다. 구역질이 치밀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

꾸역꾸역 다 먹지도 못할 음식을 시킨 것? 하다하다 나에게 복종하겠다는 개도 웃을 나약함? 쓸쓸하게 삼각김밥을 쑤셔 넣는 외로움을 스스로에게 조차 들키기 싫은 초라한 마음? 가난이 몸에 배어 먹을 것을 버리지 못하는 청승?      


아무튼 멍청하다. 인터넷 창을 열어 <키토김밥 식중독>을 검색해 보았다. 지식인에 의사들이 줄줄이 댓글을 달았는데 보통 식중독은 짧게는 수시간, 길게는 12시간 이후에 증세가 나타난다고 한다. 이런 젠장.     

내 장(腸)이 튼튼하길 기도할 밖에. 


그 사이 한번 더 양치질을 하고, 차를 마셔도 입안의 쉰 맛이 가시질 않는다.     

단단하게 살아내기로 했는데, 이토록 미련한 쉰맛나는 삶이라니.

동네 방네 멍청함을 자랑하며 이런 삶의 태도를 진심으로 반성한다. 나를 너무 믿지 말았어야 했다. 


         


저는 멍청하지만, 여러분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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