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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May 11. 2019

5월, 봄, 어느 어머니들.

숱이 적고 가늘디가는 머리카락 속까장 땀이 나서 반짝반짝 함스로. 아픈 것맨이로 쌕쌕 숨을 몰아쉼스로.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 한강 作, 소년이 온다. 중.



어릴 때 옆집 살던 오빠 이름은 <종돈>이었습니다.

특이하고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오빠는 늦둥이 외아들이었습니다.

나보다 세 살이 많았고, 장난꾸러기에 놀기 좋아하는 까까머리 오빠였습니다.

장난도 잘 치고, 농담도 잘 하고, 춤도 잘 추고, 운동도 잘하고.

아, 공부는 못했네요.

그리고 정이 많고 착했어요.

소심하면서도 까칠한 구석이 있어서 사람들하고 어울리지를 못했던 나를 늘 챙겨주고 이뻐해줬던 오빠였습니다.

잘 놀다가도 제가 심술이 나서 주먹질이라도 하면 피하는 척 하면서 실은 다 맞아주던 오빠.

그 동네에서 오빠네가 먼저 이사를 갔고, 몇 년 후에 저희 집이 이사를 갔습니다.

한동안 오빠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제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쯤인가? 어느 겨울 날에 종돈이 오빠 어머니가 저희 집에 오셨습니다. 허름한 옷차림에 오천원짜리 쟁반을 하나 사들고요.

이사 갔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이제야 찾아왔다고.

여기저기 아는 사람을 통해 물어물어 찾아는 왔는데, 와 보니 주머니에 오천원 뿐이더라고.

그래서 선물이라고 이걸 사왔다며 멋쩍게 웃으시더군요.

아줌마는 저희 엄마랑 안방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엄마가 물었습니다. "종돈이는? 뭐해? 대학교 갔어? 아님, 취직했나?"


....."죽었어."


군대에서 사고로 죽었고, 대전 국립묘지에 있다고 했습니다.

몇 해 됐는데, 이제야 정신이 좀 나니 사람들도 만나고 다닌다고.

그래서 지금에야 왔다고.

그 후로 아줌마를 뵌 적은 없습니다.

흘러흘러 아저씨, 그러니까 종돈이 오빠 아버지가 정신 줄을 놓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뿐.


벌써 20년도 훌쩍 지난 이야기입니다.

'째리돈'이라고 불렸던 종돈이 오빠, 여드름 빡빡에 뿔테 안경 쓰고, 쫙 붙은 청바지 입고 마당에서 춤추던 종돈이 오빠.



5월, 5.18. 그리고 지난 달 4월, 4.16.

이 찬란한 봄날을 잔인하게 맞이할 어느 어머니들이 생각납니다.

저희집에 오셨던 그 날, 종돈이 오빠 어머니는 눈물 끝에 헛헛한 웃음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고작  스무 살 내 새끼.. 나 그 새끼 얼굴 잊어버리기라도 하면 나 미안해서 어쩌냐.  그 전에 죽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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