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가까운 시간, 선잠이 들었다. 희미한 벨소리가 들려와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거리며 휴대폰을 찾았다. 액정화면에 뜬 이름을 보고 반가워 목소리를 가다듬고 바로 받았다. 그 시간에 전화하기 힘들었을 유부남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술에 취해 고조된 목소리였다. 회식을 마치고 집에 가던 길, 그는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며 느닷없는 말들을 했다.
“사실 난 다 알고 있다. 넌 이타적인 사람이라는 걸. 너 주변의 누군가가 너보다 잘되거나 뛰어나더라도 너는 질투하거나 시샘하지 않고 그냥 그 사람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잖아. 그런 너의 마음, 그리고 그저 묵묵히 너의 길을 가는 모습을 보며 배워. 그 마음과 여유. 그것 때문에 난 지금도 이렇게 뜬금없이 너에게 전화를 하는 거야.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힘들 때마다 가끔 그런 너의 모습을 떠올릴 테고, 어디서든 널 응원할 거다.”
반가웠지만 성의 없이 받았던 전화 너머의 목소리로 이런 말을 들으니 눈물이 핑 돌았다. 옆으로 비스듬히 옆으로 누워 손도 대지 않고 휴대폰을 귀에 올려놓고 있었던 나는 자세를 고쳐 벽에 등을 대고 앉았다. 철없던 스무 살 무렵, 그저 동네를 돌아다니며 함께 놀았을 뿐인데, 그는 어떻게 이토록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단 말인가. 아, 그는 피아노를 치려다 포기한 유희열을 좋아하던 소년이었지.
“그 시절에도 난 네가 나중에 9 to 6로 일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다? 만약 지금 네가 그렇게 살고 있었다면 어쩌면 너에게 실망했을 거야. 이상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살아주지 않아 고마워. 그리고 앞으로도 너답게 살아서 나에게 희망을 보여줘.”
나도 나의 미래를 몰랐던 시절, 어떻게 그는 나의 근무 시간까지 점칠 수 있었을까. 우린 어렸지만 허세 짙은 많은 대화를 했다. 그 대화들은 아마 낮과 밤의 온도가 적절히 섞인 것이었다. 다양한 대화의 문장들에서 그는 날 잘 읽었고, 그 안엔 날 진심으로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을테다. 이성을 뛰어넘은, 사람 대 사람으로서. 서로의 마음을 잘 알기에, 20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여전히 좋은 친구로 남을 수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자신을 예뻐하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기가 막히게 잘 알아채는 초능력을 갖고 있다. 예술적 감수성이 충만했던 그와 나도 마치 어린아이처럼, 서로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서로를 예뻐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이 아니었을까.
자주 보지 않아도 믿음이 가고 의지가 되는 친구가 있다. 오랜 친구들이 그렇다. 어떤 방식으로든 빛났던 서로의 역사를 알고 있기에, 둘 사이의 믿음과 애틋함은 시간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 아니, 어쩌면 더욱더 깊어진다.
뜬금없이 걸려 온 반가운 전화벨에 감격해 잠을 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