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예술가 U, 39세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
좋아하는 영화 평론가의 책에 나왔던 이 구절을 보고, 내가 살아가는 태도와 닮아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던 적이 있었다. ‘이렇게 유명한 영화 평론가도 인생 전체에 대한 계획은 골치 아픈가 보구나.’라고 그를 나와 동일시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고, ‘그와 같이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면 그의 인생처럼 꽤 괜찮은 사람이 되어 있으려나?’라는 기대도 했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이지, 내일을 고민하기엔 오늘 하루조차 어떻게 살지 걱정이 많은 현직 순수예술가의 성실한 하루는 알람 없이 깨어난 오전 8시경부터 시작된다.
바삐 나가야 하는 일정이 없다면,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의 일정을 계획한다. 그리고 침대 위에서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다. 몸을 동그랗게 굴러, 으잇차! 소리와 함께 일어나서 이부자리를 정리한다. 소변을 보고 양치를 하기 전,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다름 아닌 양말을 신는 것이다.
세수도 하기 전에 일어나자마자 하는 일이 양말 신기라니. 스스로 생각해도 이것은 조금 이상한 습관이다. 나는 이 독특한 습관을 대구에서 만난 영이 언니로부터 배웠다.
2017년, 갑자기 살게 된 도시, 대구와 사랑에 빠졌다. 그해에 만난 사람들, 기회들, 모두가 행운이었고, 아름다웠다. 대구에서 태어나 쭉 대구에서 살고 있는 영이 언니와는 그 작업실에서 만났다. 그리고 2017년이 저물어가던 12월에 급격하게 가까워졌다. 언니가 기획한 행사에 나를 초대해주었고, 뒤풀이를 통해 함께 술을 마시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통금시간이 있던 작업실의 규칙 때문에 시내에 혼자 살던 언니의 집에 가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남자든, 여자든 어쨌거나 하룻밤을 같은 공간에서 보내게 되면 부쩍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그렇게 영이 언니와 나는 서로의 집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공유 오피스, 공유 자전거, 공유 자동차….’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빠질 수 없는 키워드는 ‘공유’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지금 우리는 많은 것들을 다양한 사람과 ‘공유’하며 살고 있다. 대구에 혼자 사는 영이 언니와 성남에 혼자 사는 나는 그렇게 서로의 집을 ‘공유’하며 3년째 서로를 관찰해왔다.
대구의 작업실에서 나온 이후로는, 대구는 주로 언니를 보러 간다. 여러 번 그녀의 집에 들락거리며 언니의 생활 규칙과 습관을 관찰하게 되었는데, 언니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거의 처음으로 하는 행동은 ‘양말을 신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언니의 맨발보다 양말 신은 발을 본 기억이 많았다. 하루는 그 습관이 너무 독특해서 물어본 적이 있었다.
“언니, 왜 양말을 눈 뜨자마자 신어? 안 답답해?”
언니는 손과 발에 땀이 많다고 했다. 버스 손잡이를 잡으면 손에서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여서, 수술이 가능해질 나이가 되자마자 비교적 많이 쓰는 손은 다한증 수술을 했다고 했다. 수술하지 않은 발은 여전히 땀이 많이 나기 때문에 양말을 신고 있어야 불쾌하지 않다고 했다. 발의 땀이 온 집안의 먼지를 청소하게 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언니는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양말을 신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언니의 집은 늘 깨끗했다. 바닥은 늘 뽀송뽀송했고, 물티슈는 집안 곳곳에 있었다. 언니가 나의 집에서 머물다 갈 때도 언니는 늘 바닥을 닦았다. 그러면서도 내가 오해할까봐, “네 집이 더러워서 닦는 게 아닌 거 알지? 내 발이 찝찝해서 그래.”라고 말하며 닦고 또 닦았다.
영이 언니가 양말을 신기 전이나 양말을 벗은 후엔 늘 바닥을 청소하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발에 땀이 없지 않은 나 또한 그 습관을 따라 해 보았고, 꽤 괜찮은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나 더워지는 계절이 오면, 나의 맨발에 온갖 집안 먼지가 달라붙어 하루에도 여러 번, 발을 닦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사실, 그 과정을 통해 집이 얼마나 더러운지 체감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정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양말을 신고 생활을 하면, 매일 청소를 하지 않아도, 눈에 보이는 것들만 줍고 닦으면 그만이게 되었다.
영이 언니는 인생의 많은 시간을 양말을 신고 있지만, 청소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나도 안다. 청소할 때, 그리고 하고 나서 기분이 좋다는 것을. 하지만 영이 언니와는 다르게 나는 청소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더군다나, 매일 하고 싶은 종류의 집안일이 아니다. 나의 발바닥이 양말이라는 탈을 쓰면, 바닥의 먼지 정보를 조금은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나의 생활은 조금은 더럽지만? 편해지게 되었다. 영이 언니가 알려준 생활의 지혜 덕분에.
그렇게 나는 오늘 하루도 양말을 신고 성실하게 살기를 계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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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은 책이다』 ,이동진, 2011, 위즈덤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