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T, 37세
혼자 산 지 6년이 되었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3년, 그리고 한국에 들어와 잠시 친척 동생과 함께 살았던 때까지 합치면 거의 10년을 부모의 곁을 떠나 살았다. 물론, 물리적으론 떠나 살았어도 심리적, 물질적으론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과 물리적으로 따로 살고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많은 경험을 하게 했다.
혼자 산다는 것, 3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이에 대해 더욱더 많은 생각을 한다. 바쁘다는 이유로 이틀 이상 부모님과 연락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애인이 없을 때는 주기적으로 연락하는 사람이 한 명이 안 될 때도 있다.
이런 순간들이 오면, 혼자 사는 사람인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화장실에서 샤워하다 넘어져서 크게 다치거나 죽어도 아무도 모를 수 있겠구나.’
사람들은 어쩌면 비참하고 외롭게 죽지 않기 위해 결혼이라는 것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고독사(孤獨死)하는 일은 피할 수 있을 테니까. 대한민국이 원하는 여성의 결혼적령기를 넘어가면서부터 결혼을 한다는 것,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다른 가정에서, 다른 삶을 살던 두 사람이 왜 같은 공간에 살면서 사랑하며 동시에 부대끼고, 싸우는 걸까?
정말 다른 성향을 가진 엄마와 아빠가 40년을 함께 살아오는 것을 보며, 그리고 주변의 많은 부부를 보며, 아무리 죽기 살기로 싸워도 결국 ‘내 편’이기 때문에 의지하고 많은 것들을 참고 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 편’을 만드는 것. 요즘 같은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코로나 시대에 ‘내 편’을 만든다는 것은 더더군다나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형성된 가족 빼고,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하여 ‘내 편’을 만들어 가족이 된다는 것. 그 어려운 일을 사람들은 어찌 그리 잘 해내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미래의 배우자가 될) 남자 사람 ‘내 편’을 만드는 일은 현재 진행형이므로 잠시 접어두고, 남녀를 불문하고 내 지인 중, 내가 무엇을 하든 어찌 됐건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를 생각해보았다.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 긴장되던 첫 수업에서 만난 채블리는 사람을 조심스럽게 사귀는 타입이었다. 충분히 관찰한 후에, 스스로가 정한 ‘내 친구’라는 기준에 가까운 사람이다 싶으면 그때부터 적극적으로 관계에 몰입하는 사람이었다. 첫 수업에서 나의 인상이 나쁘지 않았는지 그녀는 조심스럽게 나에게 아주 천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그렇게 조금 느리게 친분을 쌓아갔다. 그리고 대학원을 졸업할 때 즈음엔 나는 아마 매우 높은 점수로 그녀의 사람이 된 듯했다.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 응원하고, 옳고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주는 채블리는 (적어도 나에겐)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사람이다. 내 사람이다 싶으면 내리 당근만 주는 그녀는 나에게 채찍 한 번을 준 적이 없었다. 어쩌면 조금은 위험한 사랑일 순 있겠으나, 적어도 비뚤어진 사랑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어쩌면 남자 ‘내 편’을 찾는 일보다, 친구 ‘내 편’을 찾는 일이 더 어려운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지금과 같은 불신시대엔. 그 어려운 일을 내가 해낸 느낌이다. 채블리로부터 ‘내 편’이 있다는 든든한 느낌을 늘 받는다. 비록 나는 남자 ‘내 편’은 아직 없지만, 영원한 ‘내 편’인 그녀가 주는 무조건적인 이 사랑을 안전하게 지켜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