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 안무가 R, 37세
젊은 남녀 여덟 명을 한 달 동안 같은 공간에 살게 하면서 ‘썸’을 타게 하고,그들의 시그널을 관찰하는 예능 프로그램 『하트 시그널』 (2020년 채널 A 방영)은 보는 사람까지 덩달아 설레게 한다. 만약 방송에 표현되는 출연자들의 행동과 표정이 모두 거짓이라면, 그들은 수준급 연기자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나도 모르게 삐져나오는 버릇이나 습관적 행동이 자연스럽게 비춰지기 때문이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애청자인데, 현재 방영되고 있는 시즌 3 남자 출연자 중 한 명의 그 삐져나오는 버릇을 캐치해내었다.
어쩔 줄 모를 정도로 좋을 때, 혹은 내 마음을 상대에게 아직은 들키고 싶지 않을 때, 그는 치아로 입술을 깨물었다. 상대방을 보기만 해도 미소가 번져 나오는 그 마음을 숨기려 한 행동일 것이다. 관찰자인 내가 ‘저러다 입술 다 터지겠네.’라고 걱정할 정도로 그 출연자는 마음에 드는 이성 앞에만 서면 입술을 깨물어 대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면서, 비슷한 습관을 지닌 나의 동료가 떠올랐다.
2017년 5월, 아티스트 레지던시에서 멘토와 멘티의 역할로 만난 그는 나와 동갑이었지만 나보다 훨씬 많은 경력을 쌓은 예술가 선배였다. 그의 작업실에 초대되어 처음 그를 본 순간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일반인 중에도 이렇게 얼굴 작고 잘 생긴 사람이 있구나’하고 먼저 흠칫 놀래고, 동시에 ‘이런 부담스러운 비주얼의 소유자와는 친해질 수 없겠구나’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프로 오지라퍼인 나는 호기심이 왕성하여, 내가 관심이 가는 사람과 금방 친해지는 뛰어난 재주를 가졌다. 상대가 이성이든, 동성이든 간에. 친해지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잘생긴 그와도 어느덧 술 한잔 기울이며 작업 이야기를 하고, 언제나 응원해주는 사이가 되었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충분히 그의 버릇을 관찰할 정도로 친해진 사이가 된 것이다.
하트 시그널의 남자 출연자처럼, 그도 미소를 감추는 버릇이 있는 것을 시간이 흐르면서 발견하게 되었다. 그 덕에 그가 치아를 드러내며 웃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가끔 술자리에서 대화를 나눌 때, 삐져나오는 웃음을 그는 입술을 오므려 작은 미소로 감춰댔다. 보통 그와 나는 단둘보다는 여러 명이 함께 어울리는 자리가 많았기 때문에 하트 시그널의 출연자처럼 앞의 있는 이성에게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한 것은 아닐 테고, 본인이 웃음이 헤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숨기기 위한 행동일까?
어떤 사람의 특정 버릇이 발견될 때, 그 모습이 예뻐 보일 때는 바로 그 사람의 마음이 느껴질 때 인 것 같다. 하트시그널의 남자 출연자가 상대방을 좋아하는 예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한 무의식적 행동이 귀여워 보이듯, 나의 동료인 그가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웃음을 참기 위해 하는 입술 오므리기 기법 또한 예뻐 보였다. 어쨌든 지금 웃음이 나올 정도로 재밌는 순간이라는 증거일 테니까.
그렇다면 타인에게 발견되는 나의 예쁜 습관, 버릇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나의 버릇은 상대방에게 보내는 반짝거리는 눈빛인 듯 하다. 땡그란 두 눈을 더 크게 뜨고 약간 상기된 음성으로 대화를 이끌어가는 진정한 오지라퍼의 시그널. 그리고 그것을 캐치해 주고 예뻐해 준 상대와 만남을 지속할 수 있었다.
반복해서 발견되는 한 사람의 어떤 무의식적인 버릇은 어쩌면 그 사람이 타인에게 강하게 기억되기 위한 필살기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강하게 기억에 남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예쁜 마음이 담긴 버릇 하나 정도를 연마해보시길. (물론, 상대의 관찰력에 따라 그것이 발견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