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Q, 37세
“혹시 얼마 전에 유희열 라디오 천국에 사연 소개되지 않았어요?”
내 기억이 맞다면, 이것이 그와 나의 첫 대화였다. 미국 유학 시절, 나의 기쁨의 4할 정도를 차지하던 라디오 방송,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 은 주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 그림 작업을 할 때 나의 귀와 정신을 즐겁게 해주던 플랫폼이었다. 고성이도 라천(라디오 천국의 줄임말)의 열혈 청취자였다. 목례만 하던 사이였던 그와 나는 꽤 비슷한 개그 코드와 음악 취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급격히 가까워졌고, 여전히 나의 가장 친한 남사친으로 남아있다.
라천의 프로그램에는 정말 다양한 것들이 많았다. 심야에 어울리지 않는 노래 대결이라든지, 외로운 청취자와 전화 연결을 해서 연애 못 하는 이유, 연애 잘하는 노하우에 대해 말해준다던지 하는, 유희열의 별명인 감성 변태다운 면모를 가득 가진 프로들이 즐비했다. 콘텐츠는 변태스럽고 웃겼지만 음악 선곡만큼은 웃기지 않았던 이 라디오 프로그램 덕분에 나의 유학 생활이 촘촘할 수 있었다.
시차 때문에 비록 실시간으로 들을 순 없었어도, 같은 날짜의 다른 시간을 공유하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심야 라디오 방송이지만 한낮에 들어도 이상한 구석이 없었던 내 취향 저격 방송이었다. (라디오 키즈인 나는 이 방송을 감히 라디오 청취 인생 통틀어 최고의 프로그램으로 꼽겠다) 이 방송을 들으면서 낄낄거리고 누볐던 뉴욕의 지하철, 거리, 내 작업실들의 기억과 풍경이 여전히 생생하다.
실시간으로 듣기 어려운 시간대라, 매일매일 방송 콘텐츠를 다운로드 받아야 했다. 그렇게 저장한 파일이 거의 3년 치이다. 언젠가 외장하드를 정리하면서 지울까도 고민했지만, 왠지 나의 유학 시절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아서 건드리지 않았다.
고성이와 나는 안부도 묻지 않고 바로 본론의 대화를 하는 오래된 친구다. 가끔 우리는 (“이 노래 들어봐”의 의미가 내포된) 유튜브 링크를 주고받는다. 그 뒤에 “OOOO년 O월 O일 라천에 나온 노래다.”라는 메시지를 잇는다. 그리고 또 가끔은 오늘 날짜의 라천 방송을 듣기도 한다. 이를테면 오늘이 2020년 8월 16일이면, 2010년 8월 16일 방송을 듣는 것이다. 그땐 무슨 일들이 있었고, 어떤 생각과 감성으로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지, 그 방송을 들으며 잠시나마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같은 날짜의 다른 시간으로 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일도 작업하면서 오랜만에 딱 10년 전인 2010년 8월 17일 라디오천국 방송파일을 재활용해야겠다. 그리고 고성이에게 그날의 명곡을 하나 보내줘야겠다. 10년 전, 찬란하게 빛나던 우리의 젊은 날을 추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