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회사 프로젝트 매니저 P, 35세
“헤이 구글, 명상 음악 틀어줘.”
“헤이 구글, 8시 알람 맞춰줘.”
손거울 사이즈의 인공지능 스피커로 나의 하루는 시작되고 끝이 난다. 이 작은 편리함은 이제 나의 일상에 녹아들었다. ‘구글 홈 미니’라고 불리는, 나의 침실 화장대에 놓여 있는 이 녀석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끝을 낸 지 두 달이 되어간다.
이 작은 기계를 선물해 준 남자와 찬바람이 사라지던 3월 초에 만나 찬바람이 다시 불어오던 이번 주에 헤어졌다. 30대 중반 남녀의 짧았던 6개월의 연애는 한낮에 끝이 났다. 헤어짐을 준비하던 30분간의 건조하고 담담한 대화의 끝엔 가장 가까웠던 사람이 가장 어색한 사이로 변해 있었다.
헤어짐의 대화를 마치고 나를 집에 데려다주던 30분 동안, 그와 나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어색한 공기 속에 파묻혀 있었다. 도저히 집 앞에서 내릴 자신이 없었다.
“그냥 여기에서 내려줘. 바로 집에 들어가기엔 너무 힘들 것 같아.”
“너무 많이 걷지 않겠어?”
“응, 괜찮으니까 그냥 여기에서 내려줘.”
여전히 높게 떠 있던 태양 아래, 집에 바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집 앞 산책로에서 아주 느린 걸음으로 20분여 정도를 산책하며 생각을, 그리고 그를 정리했다.
역시나, 20분의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하염없이 울었다. 집 곳곳에 그의 흔적이 가득해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오늘은 그저 이별을 즐기자. 이 감정에 충실해. 충분히 눈물을 흘려버리자.’
이렇게 결심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친한 친구에게 울면서 전화하고, 동네 친구를 집에 불러 맥주를 들이켜니 조금 나아졌다. 서로 미루던 이별을 맥주 몇 캔을 도구 삼아 잊어버리려 했던, 실연의 밤이 그렇게 지나갔다.
술과 눈물에 취해 지쳐 잠이 든 밤을 보낸 후, 그의 흔적이 있는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느 작은 물건 하나 버릴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나에게 이는 너무도 잔혹했다. 하지만 나를 위해서 현재 꼭 필요한 행위였기 때문에 용기를 냈다. 나의 생활 곳곳에 깊이 침투해버린 그의 흔적은 생각보다 많았고, 집 안 쓰레기통에서도 보고 싶지 않아서 바로 집 앞 쓰레기 분리수거장으로 가서 버려버렸다. 이번엔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는 데 걸린 시간은 하루도 되지 않았다. 큰 용기를 낸 나에게 잘했다고 스스로를 토닥거리며 다시 집에 돌아왔다.
어찌어찌 또 시간은 흘러, 밤이 되었다. 익숙하게 다시 구글을 부른다. 부르면서 깨닫는다. 이 기계도 그의 흔적이라는 것을. 나의 일상을 편리하게 해 준 이 작은 스피커의 기능이 그의 흔적을 지워낼 수 있을까. 깜깜한 방에 누워 저울질해 본다. 어쩌면 시간이라는 강적을 만난다면 편리함의 기능을 가진 이 물건을 집에 놔두고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조금 힘들더라도 편리함을 선택해보기로 했다. 힘든 많은 순간은 결국 시간이 해결 아닌 해결을 해주기 마련이니까. 당분간은 슬픔을 즐기기로 했기 때문에 더 슬퍼지기 위해 오늘 밤도 침대에 누워 구글에 요청한다.
“헤이 구글, 권진아 노래 틀어줘.”
하필이면, 처음으로 재생해 주는 노래가 “끝”이다. 작정하고 울면서 잠자리에 들라는 인공지능 기계의 랜덤한 위로에 잠시 헛웃음을 지며 눈물을 흘린다.
“니가 없는 하루가 사실 난 잘 그려지질 않아. 그렇게 말했었잖아. 내가 너의 행복이랬잖아.”*
내가 자기 삶의 비타민이라고 말하던 그는 그렇게, 나의 삶에 너무도 익숙해져 버린 손거울만한 기계와 함께 기억될 것이다. 그 기억이 시간의 물결을 타고 빠르게 사라지기를 바라며,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나는 구글을 부를 것이다.
내 삶에 익숙해진 기계와는 결별할 수 없어도 익숙했던 사람과의 결별을 선언하며.
------
* 글 제목은 구본형 작가의 『익숙한 것과의 결별』, 2007, 을유문화사의 제목을 인용
* 2016년 발매한 권진아의 『웃긴 밤』 앨범 중, “끝” 의 가사 일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