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만한 남자가 없네? :내 남자의 표본

초딩 L, 9세

by Eugene



보드랍지만 탱탱한 살결, 웃을 때 들어가는 볼 양쪽의 보조개, 볼에 있는 매력점, 피곤할 때나 살이 좀 빠졌을 때만 슬쩍 드러나는 쌍꺼풀, 주체할 수 없는 머리숱, 잘 구부러지는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의 유연함(이런 사람들이 재주가 많다는 설이 있다), 짧게 자른 손톱. 칫솔질을 좀 험히 해서 칫솔을 먹는 건지 이를 닦는 건지 좀 헷갈리지만, 아무거나 잘 먹고, 먹을 때 소리를 내지 않는, 여러 가지 현상과 상황에 호기심이 많으며, 정이 많아 짧은 이별에도 눈에 눈물이 고이고, 말을 예쁘게 하는.


미래에 나와 함께 살 사람이 이러했으면 좋겠다. 이 희망 사항은 나의 9살 남사친, 첫째 조카 예준이로부터 기준 되었다. 보기만 해도 눈웃음이 절로 나는 9살 남자아이로부터 나의 이상형을 그리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지만, 9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보다 더 괜찮은 남자를 본 적이 없다.


나와 27살 차이가 나는 이 남자는 그 누구보다 고모부를 원하고 있음을 강하게 느끼는 요즘이다. 그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깜깜한 방에 누워 달빛이 비친 천장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고모, 고모는 언제 결혼할 거야?”

“글쎄.. 아직 좋은 짝꿍을 못 만나서.. 언젠간 만나겠지? 왜? 고모가 빨리 결혼하면 좋겠어?”

“응. 내가 저번에 어디 광고에서 보니까~ 무슨 짝 찾아주는 그런 게 있는 거 같던데~ 뭔지 알아?”

“ㅋㅋㅋㅋ 응 남자 소개해 주는 그런 거?”

“응. 아는구나? 해 본 적 있어??”

“응. 해 봤지~”

“근데 짝꿍 못 찾았어?”

“응~ 못 찾았으니까 아직 결혼을 안 했겠지??”


말도 못 할 때부터 스마트폰의 (오른쪽으로 밀어 잠금 해제) 손가락 제스쳐가 익숙한 2012년생 이 남자는 어쩌면 당연히 배우자도 인터넷 세상에 있을 거라 생각하는 듯 하다.


“그럼 한 번 유튜브에 고모가 만나고 싶은 남자를 검색해봐~”

“뭐라고 검색해야 할까? 너무 어려운데?”

“음.. 잘생긴 남..자?”


내가 줄곧 손흥민 선수가 이상형에 가까운 외모를 갖고 있다고 예준이에게 이야기해서 그런가? 9살 예준이에게 세계적인 축구 선수는 잘생긴 남자의 표본이었나보다. 손흥민 선수를 만날 확률은 1%도 되지 않을 테고, 예준이가 생각하는 잘생긴 남자를 만날 확률도 거의 없을 테니.. 나는 생각을 조금 바꿔 보기로 한다.


‘어라? 내가 지금 대화하고 있는 이 남자는 언제나 날 웃게 하잖아? 가끔은 감동 을 주기도 하고 만나고 헤어질 때 꼭 안아주잖아? 이만한 남자가 없네?’


그렇게 그는 나의 배우자 표본이 되었다. 며칠 전, 부모님 댁에 조카들이 놀러 와 이틀간 함께 보낸 적이 있다. 오빠 부부 없이 조카들만 올 때가 간혹 있는데, 그럴 때면 예준이는 누구랑 잘래? 라는 물음에 늘 고모! 라고 고민 없이 외친다. (아, 이 스윗함이란)


꼭 성인 여성이 성인 남성을 이상형으로 삼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9살 남자아이를 기준 삼아 나의 배우자를 찾는다면 더 어려워진 예준이 고모부 찾기 게임을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적어도 나보다 조금 더 어린 남자는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작은 희망을 품고 오늘도 예준이 꿈을 꿔야지.


KakaoTalk_20200920_233408012.jpg 내 눈엔 그의 칫솔마저 사랑스럽다. 과격한 칫솔질의 주인공, 왼쪽 노란색 피카츄 칫솔 주인이 바로 내 이상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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