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나무

주부 K, 62세

by Eugene

여동생 두 명, 그리고 오빠 한 명을 두었던 그녀는 그녀 나이 스무 살이 갓 넘었을 때 막내 여동생을 병으로 잃고 한 가정의 둘째, 그리고 맏딸로 자랐다. 여동생을 한 명 잃어 삼남매가 된 셈이다. 보통 둘째, 혹은 중간에 낀 형제, 자매는 뭐든 애매하다. 첫째가 받은 온 가족의 꽉 찬 첫사랑과 막내가 받은 끝사랑에 비교할 수 없는 미지근한 중간온도 정도의 사랑을 받는달까.


한씨 가문의 둘째, 상림이는 부모로부터 애매하게 받은 사랑을 많은 이들에게 베풀 줄 아는 지혜로운 여자로 자란 내 딸이다. 집에서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랑을 한 남자에게서 강렬하게 받았는지, 꽃다운 스물 네 살의 나이에 결혼하고 엄마가 되었다. 4남 2녀 중 열렬한 끝사랑을 받은 늦둥이 막내인 남자와 결혼을 한 상림이는 (막둥이 남편임에도 불구하고) 시부모님을 20년가량 모셨다. 그 무렵 나는 무리해서 땅에 투자했다. 그 땅 덕에 팔십이 넘은 지금도 다달이 월세를 받으며 사우나를 겸비한 실버타운에 살고, 증손주들에게 용돈도 주는 능력 있는 증조할머니가 되었다. 그 땅은 무려 지금의 판교 현대백화점이 들어선 근처다.


벽에 똥칠까지 하던 늦둥이 막내의 아버지를 모시던 나의 안쓰러운 맏딸 상림이에게 나는 판교의 땅 일부를 주었고, 그녀는 그곳에 높은 오피스텔을 지었다.


그 이후로 상림이는 세금 폭탄을 맞기는 했지만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 쓰고 싶은 것은 다 쓰며 넉넉하게 살아왔다. 그리고 물론 그녀의 자식들에게도 아낌없이 베풀었다. 꽃다운 나이 이십대부터, 자식은 말할 것도 없고 (시부모를 포함한) 양가 부모에게 아낌없이 몸과 마음, 물질까지 베풀던 그녀의 나이가 어느덧 예순이 넘었다.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을 내뱉는 지금의 상림이는 꽤 행복하게 살아온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위의 이야기는 현실 속 상림이의 딸인 내가, 그녀의 엄마가 되어 쓴, 픽션이 주를 이룬 이야기이다. ‘엄마’라는 존재는, 아니 단어 그 자체만으로도 눈물을 나게 하는 인물이다. 엄마는 딸에게 그런 존재이다. 나의 엄마는 더더욱 그렇다. 삼십 대 중반이 되어서도 여전히 싱글이며, 철부지인 딸을 물심양면 언제나 응원하고 도와주는 마더 테레사 같은 나의 엄마, 상림씨. 그녀의 고구마 같은 답답하고 지루한 현실에 잠시나마 상상한 이야기를 통해 그녀를 응원하고 싶었다. 그녀의 다른 생애는 지금보다 이만 배쯤은 더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나의 전생, 혹은 후생을 내가 스스로 지어낼 수만 있다면, 상림이의 엄마로 태어나, 내가 받은 만큼 아낌없이 그녀에게 주고 싶다.


대다수의 우리는 ‘최선’을 다해라. 라는 말을 어릴 적부터 많이 들어온다. 이 말을 수도 없이 들어오면서 나는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을 다하는 것인지 잘 몰랐다. 그런데, 나의 엄마, 상림씨가 나에게 몸과 마음을 다해 응원하고 베풀어 주는 것이야말로, 그 말로만 듣던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나에게 언제나 최선을 다해주며 늘 한결같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다. 내리사랑이라 했던가. 상림씨의 딸로 태어난 이상 내가 그녀에게 베푸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어 보이니, 전생이나 후생에서나마 그녀에게 아낌없이 주는 엄마로 등장했으면 한다. 그리고 꼭 그 시간에서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상림아, 나의 사랑하는 딸 상림아. 나의 딸로 태어나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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