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아직 일하고 싶다

퇴직자 J, 68세

by Eugene


아빠는 6년을 놀았다.


2014년, 국가에서 인정하는 경로(敬老)의 나이가 되기도 한참 전인 60세라는 나이에 아빠는 자발적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누가 밀어낼 때까지 버텨야 하는 것이 회사생활 아닌가. 박수칠 때 멋지게 떠나는 허세를 부리고 싶었던 나의 아버지는 그렇게 한 회사의 대표직을 스스로 때려치웠다.


그리고 비로소 작년에 아빠는 나라가 공인하는 경로우대의 나이가 되었다.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각종 국공립 기관 역시 공짜로 입장이 가능해졌다. 슬프지만 아빠는 이제 공식적인 노인이 된 것이다.


40년 가까이 한 가정의 가장으로 제대로 쉴 틈 없이 매일매일 일만 해 온 아빠는 이제는 놀고 싶다 했다. (이 말은 어쩌면 본인이 노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발언이었을지도 모른다) 인터넷으로 바둑 게임을 하고, 주식도 시작하고, 한 달 이상 다른 나라에서 머물며 골프도 치고, 탁구 레슨도 받았다. 2년 전쯤엔 아빠의 40대를 온전히 보낸 동네로 다시 돌아왔다. 여전히 이 동네엔 그 시절을 함께 보낸 동네 친구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 테니스를 치고, 바둑을 두며 아울러 늙어 가는 중이다.


얼마 전, 아빠는 외국 계열 회사의 공장에서 산업 안전 솔루션을 제안하고 가르치는 자리를 제안받았다. 천성이 성실하고, 부지런한 그가 외국 계열 회사에서 오랜 시간 일하며 수장으로 물러난 경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노는 것이 좀 심심해졌을 찰나에 일자리 제안이 들어와서 내심 기분이 좋으셨었나 보다. 나라에서도 인정한 노인인데, 기업에서 아직 불러주니 자랑하고 싶었던 아빠는,


(나 아직 죽지 않았지? 라는 마음이 내포된 듯한 자신감으로)

“아빠도 다음 주부터 다시 일한다!”


라고, 가족 채팅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그 메시지에 나와 오빠, 그리고 새언니는 엄지 척 이모티콘으로 짧고 굵게 축하를 해드렸지만, 그 가벼운 그림으로 표현한 마음이 내심 서운하셨나 보다. 노인의 나이에,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자식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아빠는 마치 취업에 성공한 사회초년생 같았다.

다시 시작한 일의 첫 업무는 여수 출장이었다. 기차 예매에서부터 순탄치 않았던 아빠는 잔뜩 상기되고 긴장된 상태로 1박 2일의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셨다.


“오랜만에 다시 일하니까 쉽지 않네.”


누군가에게 당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6년 동안 내리 놀았던 노인을 춤추게 했다. 요 며칠 아빠는 평소와 다르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 당분간은 싸울 일은 없겠구나. 라고 생각하며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기분 좋은 날은 채 일주일이 가지 않았다. 지난 주말, 엄마와 나, 그리고 아빠가 차로 이동하던 중에 별것 아닌 일로 아빠와 말다툼을 했다. 혼자 사는 나를 내려주고 집에 들어간 엄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아빠가 오늘 오전에 일 그만 나와도 된다는 전화를 받았어. 그래서 기분이 안 좋으셔서 괜히 짜증이 났나 봐.”


당신은 여전히 젊고, 일할 능력이 충분한 중년이라고 생각한 노년 아빠의 자존심은 그렇게 무너져 내렸다. 스스로가 노년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아빠의 자존심을 지켜주려 한다. 자식인 내가 일주일 만에 아빠가 짤렸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만큼 자존심 하나로 살아온 고지식한 아빠한테 상처 되는 일은 없을 것 같아, 침묵하기로 했다. 그게 딸인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서. 그리고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여전히 일하고 싶은 노년의 아빠가 본인의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새 일자리를 얻기를 조용히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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