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뇽 연극 축제는 꼭 예약하고 가시길.
2007년, 전 세계의 예술인들이 유럽으로 모였던 해였다. 독일의 카셀 도큐멘타(5년마다 열리는 예술축제),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10년마다 열리는 행사), 베니스 비엔날레, 아트 바젤 등의 여러 행사가 겹치던 뜨거웠던 여름이었다. 당시 대학 4학년이던 나는 운이 좋게도 이 행사들을 보러 학교 친구들, 교수님들과 함께 가게 되었다. 이동한 것밖에 기억에 남지 않았던 찍고 찍고의 첫 배낭여행을 했던 2006년에, 다시 유럽에 가게 된다면 여유 있고 조금은 즉흥적으로 움직여봐야지. 라고 생각했던 터라, 2007년의 여행에서는 혼자 남아서 다른 도시들을 둘러보려고 계획했었다.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학교의 일정은 베니스에서 끝났던 것 같다. 남은 나의 일정은 프랑스 남동부 여행과 파리였다. 유레일 패스의 유스패스[1]가 적용되던 꽃다운 나이, 23세였던 나는 지정해 놓은 국가에서는 무제한으로 기차를 이용할 수 있는 패스를 끊었다. 그렇기에 내렸다 올라탔다를 반복하며 목적지까지 여유 있게 여행할 수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동화 같은 작은 도시 안시(Annecy)[2]는 창문 밖의 풍경을 보다 예뻐서 그냥 내렸던 곳이다. 짐을 맡길 곳도 없었던 탓에 질질 끌고 한 시간 둘러본 게 다지만, 13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파리에서 한국에 돌아가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나의 최종 목적지는 파리였다. 파리에 예약한 숙소 날짜가 될 때까지는 남프랑스에 가보고 싶었다. 미술학도였던 나는 고흐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를과, 한때 무대 미술가를 꿈꿨기에 연극 축제가 열리는 아비뇽에 갈 계획을 세웠다.
젊음이 허락한 기차를 타고 아비뇽에 도착한 시각은 자정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생각으로 숙소 예약도 하지 않고 그 시간에 갈 생각을 했는지 과거의 내가 1도 이해가 가질 않지만 어쨌든, 그땐 젊고, 무모했다. 세계적인 연극 축제가 열리던 아비뇽은 밤 12시에도 시끄러웠고, 그래서인지 혼자였어도 무섭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도미토리와 호텔은 다 들어가 봤는데 축제 기간이라 남은 방이 하나도 없었다. 점점 무섭고 불안해진 나는 마지막으로 한 곳만 더 가보고 안되면 그나마 안전한(?) 기차역에서 노숙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갔던 곳도 방이 없다길래, 슈렉의 고양이 눈을 하고, “나 한 명 잘 곳이 정말 단 한 개도 없어? 제발..아니면 여기 호텔 로비에서 쭈그려 자면 안 될까?”라고까지 말했다. 고양이가 아니여서일까. 귀엽지 않아서일까. 통하질 않았다. “아임 쏘 쏘리”라고 말하던 친절했던 리셉셔니스트는 대신 여기서 조금 떨어진 외곽이라도 방이 나면 알려주겠다고 했다. 망했다와 어떡하지를 반복하며 기차역으로 다시 돌아갔다.
다행히 아비뇽의 기차역에는 나와 같은 어린 양들이 넘쳐났다. 그중에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이럴 땐 동포가 왠지 안전할 것 같은 느낌이 있어서) 몸은 너무 피곤한데 불안해서 잠은 오질 않았다.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1시. 작은 도시의 불빛은 축제의 분위기로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었지만, 나의 마음은 어두운 공포 속에 사로잡혀 있었다.
마지막으로 갔던 호텔 리셉셔니스트에게 전화가 왔다. 택시 타고 좀 가면 있는 호텔에 방이 하나 있다고. 가겠냐고 물었다. 1초의 망설임 없이, “예스. 슈어. 롸잇 나우.”의 간단명료한 대답을 하고 나니 내 앞에 그가 보내준 택시 아저씨가 있었다. 영어를 단 한마디도 못 하는 프랑스 시골의 택시 아저씨와 나는 깜깜한 외곽 도로를 30분 넘게 달렸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찔한 순간이다. 그땐 어떤 정신으로 그 차를 탔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면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다행히(?) 호텔에 안전하게 도착을 했고, 마지막 남았다던 그 방에 들어가니 안도감에 눈물이 났다. 내가 원한 여행인데 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나? 라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기도 했다.
새벽 3시가 다 된 시간. 이대로 자기엔 이 아찔한 기억이 아까워서 욕조에 물을 받았다. 뜨거운 물로 반신욕을 하고 나니 출출해졌다. 학교 친구가 헤어질 때 절박한 순간에 먹으라고 준 컵라면이 생각이 났다. 미라클! 을 외치며 꺼냈다. 그 절박한 순간이 바로 지금이 아니겠는가. 방에는 커피포트가 없었다. 임기응변으로 화장실에서 가장 뜨거운 물을 틀고 컵라면에 물을 받았다.
아주 뜨거운 물이 아니어서 꼬들꼬들한 정도도 못 미치는 거의 생라면에가까운 면발에, 김치도 없었지만, 나의 몸과 마음을 달래 주었던 인생 최고의 라면이었다. 군대는 다녀오지 않았지만 마치 군인이 겨울 최전방에서 반합에 라면을 끓여 먹는다면 이런 맛이었을 것 같다.
젊어서 무모했던 23살의 유럽 여행. 혼자 했던 이 여행의 아찔한 경험으로 나는 어쩌면 약 30개국의 60개 도시를 여행할 수 있었던 내성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1] 만 27세 이하 여행자로 성인 요금의 35%가 저렴하다.
[2] 프랑스와 스위스의 국경 근처에 위치한 곳으로 알프스 산맥과 프랑스에서 두번째로 큰 호수인 안시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