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가 W, 42세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멜론차트 Top100을 듣는 사람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소개팅에서 나온 남자의 취미와 취향을 파악하기 위한 나의 질문에 멜론차트를 듣는다고 하면 호감이 있다 가도 급격히 떨어지게 되었다. 이건 마치 ‘나는 취향과 기준이 없어요.’와 같은 말처럼 들렸고, 귀차니즘을 보여주는 지표와도 같았으니까.
물론 지금은 나도 가끔 멜론차트 Top100을 듣기도 해서 그 까다로운 기준은 적당히 수용되지만 그래도 여전히 취향과 기준이 없는 사람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이 조건은 비단 음악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자기만의 취향이 없는 사람은 싱거운 사람 같아서 호감도가 떨어진다. 역시 음식이든, 사람이든 자극적인 것이 매력적이다.
반대로, 어쩌다 음악적 취향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다른 부분이 비호감이어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이성보다 동성 친구 사이에 이런 취향은 더욱 중요하게 작용한다. 함께 여행을 가거나, 놀 때 즐겨 듣는 음악이 비슷하면 공유하는 그 시간 자체가 두 배 세 배는 더 즐거울 테니 말이다.
자취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집에 오래 머무는 날이면 TV보다는 음악을 틀어 놓거나, 라디오를 켜 놓는 편이다. 특히, 오래된 습관 중 하나는 『배철수의 음악캠프』 (MBC FM4U라디오 프로그램, 1990~)를 들으며 저녁을 짓는 일이다. 사연도 부지런히 보낸 덕에 철수 아저씨가 초대해주는 여러 공연에도 다녀오기도 했는데, 그 공연에 함께 자주 가던 사람이 나와 음악적 취향이 딱 맞는 안빵 언니이다.
안빵 언니는 10년 전쯤, 어느 설치 작가의 어시스턴트 일을 하며 만났다. 예쁘장한 얼굴에 저음의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도 잘하고 잘 들어주는 언니는 라디오와 팟캐스트를 즐겨 듣는 도예가이다.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기억하려 하는 언니의 습관 때문에 내가 가끔 추천해 주는 음악을 언니도 즐겨 듣게 되었고, 반대로 언니의 추천 음악도 내 플레이리스트에는 늘 존재한다.
함께 공연을 자주 다녀서 음악적 취향이 공유된 건지, 아니면 취향이 같아서 공연을 함께 다니게 된 건지, 그 순서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각자의 플레이리스트 중, 한 소절만 들어도 무슨 곡인지 아는 그런 사이라 할 수 있다.
그 덕에 여행을 갈 때, 차에서 함께 듣는 음악의 감흥이 배로 커지고, 그 순간이 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최근에는 같이 캠핑하러 다니며 새로운 곳을 가는 경우가 잦아져서 더 다양한 음악과 시간을 공유하며 행복을 배로 늘리고 있다.
행복이 뭐 특별한 데 있나 싶다. 취향 하나 공유하는 거로도 이렇게 행복한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