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디자이너 X, 50세
수업이 끝난 늦은 오후, 자연스레 언니의 기숙사 방에 모이는 일이 잦았다. 단지 간장을 콸콸 쏟아 넣은 것만 같은데도, 뚝딱뚝딱 쉽게 찜닭을 맛있게 만들어 내던 그 기숙사 방 주인인 서리 언니를 10년 전 뉴욕에서 처음 만났다.
뉴욕에 먼저 입성한 나의 친구 건축학도 영리의 룸메이트였던 언니는 느지막이 대학원에 들어온 만학도였다. 나와 무려 14살 차이가 났지만, 같은 학생 신분으로 만나서인지, 우리는 친구처럼 3년 내내 뉴욕 곳곳을, 그리고 미국의 여러 곳을 함께 여행했다. 트렌드에 민감하고, 호기심이 많아 관심사에 대해 배우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성향이 나와 많이 비슷한 서리 언니의 전공은 인테리어 디자인이었다. 장소와 공간에 대한 경험과 이야기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는 나는 자연스럽게 공간을 디자인하는 서리 언니와 가깝게 지냈고, 지금도 그렇다. 어쩜 이렇게 함께 있으면 즐겁고, 유익한지, 전생에 금술 좋은 부부였거나, 아니면 내 영혼의 단짝이 있다면 서리 언니가 아닐까 싶다.
언니가 뚝딱뚝딱 만든 푸짐한 한식과 함께 1박 2일, 무한도전, 유희열의 스케치북과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뉴욕에서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언니의 음식과 싸구려 와인, 맥주 한 캔이면 세상 부러운 것이 없었다. 그날 역시 서리 언니의 기숙사 방에서 저녁을 먹고 배를 두드리고 있었다. 갑자기 언니가 가을 무렵 자주 입던, 모자가 달린 회색 짚업 가디건을 집어 들더니, 킁킁거렸다.
나: “왜? 무슨 냄새 나?”
서리: “(옷의 등 부분을 코에 대며) 킁킁킁~ 넌 샤워할 때 등을 어떻게 씻어?”
나: “손으로 씻지 뭘 어떻게 씻어? 크큭”
서리: “여기서는 샤워볼로 등을 닦으니까 구석구석 비누칠을 못 하는 느낌이야.”
나: “흠… 그런가? 난 그런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네?”
뉴욕에서 처음 마트를 갔을 때 우리나라와 조금은 다르게 생긴 식품과 물건들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이를테면, 흰색 달걀, 뭐가 들어 있고 안 들어 있는 각종 우유, 호리병처럼 생긴 배, 납작하게 생긴 복숭아 등등. 지금은 한국의 큰 마트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일지도 모르지만, 그 당시에는 (아니 적어도 나에게는)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흔히 샤워볼이라고 불리는) 꽃 모양처럼 생긴 샤워 타올 역시 그랬다. 뉴욕에서는 긴 직사각형으로 생긴 샤워 타올 대신 이것을 사용했다. 용도는 같지만, 생김새가 조금 다른 그 작은 사물의 차이가, 그날의 엉뚱한 대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 엉뚱한 대화는 5분도 안 돼서 웃으며 끝이 났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대화가 강렬하게 남아있다. (아마 서리 언니는 기억조차 못할 테지만) 나는 그래서 샤워를 할 때마다 언니를 생각하며 피식 웃는다. 그리고 구석구석 등을 더 열심히 닦는다. 언젠가 언니와 함께 목욕탕을 가게 된다면, 언니의 등을 열심히 비누칠해 주며 웃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