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 석 자를 불러주는 사람

설치예술가 Y, 50세

by Eugene


“야 최유진!”


어릴 땐, 내 이름 석 자 다 부르는 사람이 싫었다. 이건 지금도 그런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뒤에 호칭이 붙는 경우는 다르겠지만, 이름 석 자만 불린다면 왠지 그 사람과 나 사이의 아주 먼 거리가 생기는 기분이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내 이름 석 자가 불릴 때, 나의 언짢은 기분을 좋게 바꾸어 준 유일한 사람이 있다. 역시 무엇이든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 증명되던 순간이었다.


대구에서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하던 시기에 만난 성미 쌤은 3개월 동안만 대구에 머물렀다. 그 짧은 사이에 성미 쌤을 기준으로 많은 작가들이 그녀의 방에 모여 수다를 떨고, 음식을 먹고, 술을 마셨다. 그녀의 방은 참새 방앗간 같은 곳이었다.


개인전을 앞둔 작가들 작업실 문을 두드리며 술 셔틀을 돌던 입주 동기 작가들 몇몇의 우리들은 그렇게 가까워졌고, 사대문 안 반경에서 하는 개인전일 경우만 참석해서 보자는 룰을 가지고 여전히 서로를 응원하고 있다.


나와 무려 14살 차이가 나는 성미 쌤은 또래 작가들이 해주지 못하는 따끔한 충고와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가 좋다. 가끔은 호되게 혼나기도 해야 성장하지 않겠는가. 내 인생의 멘토가 또 다른 14살 차이나는 서리언니라면, 작업자로서의 멘토는 성미 쌤이다.


내가 관찰한 그녀의 애정표현 방법은 다름 아닌 이름 석 자를 온전히 불러주는 것이다.


“최경아 너는 그런 걸 배워야 해.”

“최경아 너는 그게 장점이자 단점이야.”


예전 같았으면 내 이름 석 자를 들은 순간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을 텐데, 성미 쌤이 불러주는 내 이름 석 자는 따듯하기 그지없었다. 어쩌면 그녀는 “경아야~”라고 성을 빼고 부르는 것이 낯간지럽고 오글거려서 이런 방법을 택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 듣는 내 이름 석 자보다 성미 쌤에게 듣는 내 이름은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고, 그걸 듣는 것이 행복했다.


나의 깨방정을 귀여워해 주고 내가 잘하고 있는 것, 못하고 있는 것을 선배로서 정확히 집어 말해주는 나의 멘토. 예술가라는 작업자로서 길을 잠시 잃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 언제 어디서 전화해도 반갑게 내 이름 석자를 따듯하게 불러줄 사람. 이 글을 쓰는 동안, 그녀의 안부가 문득 궁금해진다. 이를 핑계 삼아 따듯하게 내 이름 석 자를 불러줄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봐야겠다. 내가 그녀의 이름을 부를 때도 나의 애정이 전달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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