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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gene Jan 23. 2020

달콤하고도 쌉싸름한,

    어느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은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뿐이다.”


 이 철학적인 대화로 시작하는 영화 『달콤한 인생』(2005, 김지운 감독 작품)은 서양화를 전공하고 있던 대학 2학년의 미술학도였던 나에게 영화미술 감독이라는 꿈을 키우게 해주었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그리고 과하지 않은 유머가 있는 이 영화의 정서가 좋았다. 그렇게 이 영화의, 그리고 김지운 감독의 팬이 되어, N차관람[1]을 하면서, 나는 인생에 대해,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의 인생에서 어떤 찰나, 순간의 결정으로 많은 것들이 송두리째 변하는 경우들이 있다. 『달콤한 인생』은 찰나에 흔들리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매일매일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버스를 탈까, 지하철을 탈까?’, ‘김치찌개를 끓일까, 된장찌개를 끓일까?’와 같은 사소한 선택에서부터, 어떤 사람과 가정을 꾸릴지에 대한 중대한 결정까지. 인생이란 어쩌면 선택의 연속들이 이루어진 집합체이다. 때로는, 선택 자체가 어려운 경우들도 있다. 그것은 바로 (이성이 감성에 패배했을 때 나타나는) 움직이는 마음에서 비롯된 결정들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감성이 승리해버린, 그 마음에 관해 이야기한다.


 바람에 의해 타의적으로 움직이는 나무처럼 이 영화의 선우(이병헌)는 처음 본 강사장(김영철)의 젊은 애인 희수(신민아)에게 흔들려버리고 만다. 그 움직이는 마음의 끝이 달콤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는 그 마음을 어쩔 줄 모른다. 영화는 서툰 사랑의 시작을 감각적으로 묘사한다.


 작정하고 덤비는, 철저하게 계산된 마음이 아니라면 누군가에게 흔들리는 마음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나타나서 언제 사라질지 모르게 지독하게 늘러 붙어 그 마음의 주인을 괴롭힌다. 그 마음의 시작과 끝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영화의 시작에 선우는 달콤 쌉싸름한 초콜렛 케잌을 먹는다. 이는 우리의 인생, 그리고 사랑에 대한 압축적 묘사를 보여준다. 달콤하면서 동시에 쓴맛을 가진 것. 그것이 인생이고, 누군가와 사랑을 할 때 경험하는 양가적 맛이 아닐까. 비록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잠시나마 꾸고 싶은 그런 달콤한 꿈 말이다.


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1] 여러 번 봤다는 것을 뜻하는 신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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