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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gene Feb 03. 2020

가족에 관하여 1

: 평화의 탈을 쓴 건조한 관계

 "아무도 안 볼 때 쓰레기통에 처박고 싶은 게 가족이다."


 일본의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가 한 말이다. 이를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 tvN 방영)에서 삼형제 중 막내인 송새벽(박기훈 역) 배우가 인용한 장면이 떠오른다. 똑같은 도시락을 함께 먹던 맏형이 본인 것은 안 먹고 자기 반찬을 뺏어 먹던 장면에서 그가 한 대사이다. 연출자나 작가는 이 장면을 마냥 웃기려고만 넣은 게 아닐 거다. 우리는 모두 어쩌면 말을 하지 않을 뿐, 이런 생각을 한 번쯤은 해봤을 수도 있다. 세상의 모든 가족은 각각의 다양한 사연을 갖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사연 중 일부분은 아마 쓰레기통에 넣어두고 싶은 것들도 있을 것이다. 심한 경우엔 기타노 다케시의 말처럼 그 사연을 만든 사람 자체를 넣고 싶을 때도 있겠지.


 영화 『완벽한 타인』(2018, 이재규 감독 작품)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해 보이는 게임-저녁 식사 시간 동안 각자 휴대폰의 모든 내용을 공유하기-을 제안하고 파국을 맞이하는 가족, 커플, 친구 관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이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던 일임을 암시하며 영화는 본래 평화로운 그들의 관계를 보여주며 끝이 난다. 진실을 공유하는 것과 숨기는 것 중 어떤 쪽이 현명하고 행복한 것인가? 를 질문하게 하는 영화다. 친구 관계는 조금 다를 수 있지만,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혹은 알아버릴 것 같은 경우엔 알려 하지 않는 것이 스스로의 몸과 마음의 건강 상태에 좋다. 그리고 추측하건대 대부분의 가족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남자, 아내 몰래 큰돈으로 투자를 한 남편, 부모에게 소개하지 않은 남자친구와 여행을 가는 딸, 이런 경우엔 그들 모두의 평화를 위해 굳이 진실을 알릴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파트너의 알고 싶지 않은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순간 당사자는 고민할 것이다. 그냥 모르고 지나갈까, 아니면 까발려서 너 죽고 나 죽고 이판사판 갈 때까지 가 볼까. 내가 그 경우라면 (아직 처해보지 않아 상황이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모르는 척하겠다. 정 답답해서 누군가에게 터놓고 싶다면,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말할 것이다. 적어도 그 인간의 비밀을 더 알게 되어 쓰레기통에 처박고 싶을 지경까지 가게 두진 않겠다. 이는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다. 그리고 내 주변의 많은 이해관계 속 사람들을 위해서다. 물론, 가장 좋은 경우는 그런 일 자체가 없거나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겠지만.


 세상의 많은 가족은 그렇게 평화의 탈을 쓴 채, 건조한 관계로 행복이라는 주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살아간다. 어쩌면 그렇게 사는 것이 가장 가까운 가족이자, 완벽한 타인으로 동시에 살아갈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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