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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gene Feb 18. 2020

귀여워지고 싶을 땐, 사투리를.

 몇 해 전, 전라도 광주에서 시내버스를 탄 적이 있다. 마침 그때가 하교 시간이어서 버스에는 중고등 학생들이 많았다. 우르르 몰려 탄 남학생들이 아주 구수하게 사투리를 허벌나게 써댔는데, 전라도 사투리를 육성으로 들었던 건 실로 오랜만이라 혼자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크게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 보니 서울, 경기권에서 일하며 만나는 사람들 대다수 중에는 전라도가 고향인 사람을 만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왜 늘 서울에서 열리는 기아 야구 경기는 매진인지 궁금하다) 반면, 경상도 출신의 사람들은 흔하게 만났다. 일하러 가거나, 여행도 경상도로 자주 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익숙했던 경상도 사투리가 아닌, 덜 친숙한 전라도 사투리의 찰진 맛을 알게 된 그 날 이후로 나는 사투리(특히 남자가 쓰는 전라도)를 귀여워하게 되었고, 또 내가 귀여워지고 싶을 땐 무기로 장착하게 되었다. 


 (나는 이성애자이기 때문에) 남자들, 특히 내 또래 남자들이 쓰는 사투리는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서울에서 태어나 주로 서울 경기권에서 살아온 내가, 오롯이 지방에 머물며 로컬 사람들=사투리 원어민을 제대로 접한 것은 2017년 대구에서의 1년이었다. 내가 주로 접한 대구 남자들은 말의 속도가 너무 빠르고 억양도 세서 알아듣기 어려운 경우들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 스스로가 그것을 제대로 알아들었다고 판단될 때의 쾌감이 좋았다. 물론 100% 알아들었던 적은 없었을 거라 예상하지만. 그것을 알아듣기 위해 평소보다 귀를 더 많이 기울이고 집중하는 것이 조금은 피곤해서 마치 듣기평가를 하는 것 같았다. (특히 가장 어려웠던 대구말 듣기평가는 나이 지긋하신 택시기사님의 차를 탈 때였다. 거의 제3외국어 수준으로 알아듣지 못해서 어떤 기사님은 화를 내신 적도 있다) 그래도 좋았다. 적당한 그 피로감은 마치 내가 다른 언어를 하나 더 구사하기 위한 과정과도 같았다. 


 조금 덜 완벽한 언어를 구사할 때 사람은 원래의 모습보다 유연해지고, 귀여워진다. (마치 아이가 말을 막 시작한 것과 같이) 사투리를 정식으로 배워보지도, 지방에서 1년 이상 산 적도 없는 나는 지인들과 각종 매체를 통해 사투리를 흡수해왔다. 나의 그 짧은 사투리는 언젠가부터 표현하기 어려운 마음을 이야기할 때나, 분위기를 띄우는 도구로 활용되어 왔다. 물론 그 귀엽고 어설픈 언어는 내 것이 아니라 내가 아는 사투리 쓰는 누군가의 성대모사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설픈 성대모사를 할 때는 유독 많은 이들이 귀여워해 주고, 적당한 웃음도 짓는다.  


 그러니까 내가 사투리 원어민이 아니기 때문에, 나에게는 당연한 표준어가아니어서 사투리를 구사하는 로컬 사람들의 말도 귀엽게 들리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귀여워지고 싶을 때 따라 하나 보다. 훗날 내가 지방에서 오래 살 게 되거나, 사투리 원어민 배우자를 만나면 완벽한 사투리를 구사하게 될까? 그러면 나의 귀여움과 유머감은 좀 떨어질지도 모르겠다. 


 술에 적당히 취한 여자가 애교로 남자를 꼬실 때처럼,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하는 ‘귀여움’은 나에겐 사투리로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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