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다

봄날 - 방탄소년단

by 조작가

이토록 보고 싶은 사람은 누구일까? 얼마나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보게 될까. 만나게 될까, 만나러 갈게, 데리러 갈게 포함)는 말을 짧은 노래 한 곡에서 27번이나 할까?


보고 싶다
이렇게 말하니까 더 보고 싶다
너희 사진을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


얼마나 보고 싶은지, 보고 싶다고 말을 해봐도 그의 사진을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도 그가 보고 싶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사랑이 깊어지면 곁에 두고도 보고 싶어진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그 음식을 계속 먹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얼마나 맛있으면 그랬겠는가. 그것은 사랑이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의 '봄날'은 보고 싶어도 쉽게 볼 수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봄날'에는 짙은 그리움이 묻어난다.


그리움들이 얼마나 눈처럼 내려야 그 봄날이 올까, friend
얼마나 기다려야 또 몇 밤을 더 새워야 널 보게 될까 만나게 될까


보고 싶지만 쉽게 볼 수 없는 그들. "그리움들이 얼마나 눈처럼 내려야 그 봄날이 올까", "얼마나 기다려야 또 몇 밤을 더 새워야 보게 될까, 만나게 될까"라며 그 시간을 묵묵히 기다리고 있다. 그 시간을 기다리면서 마음이 변하는 것을 탓하기도 하고 마음 속에 여러번 그들을 지워보지만 그것은 생각뿐. 이러한 수사는 밥딜런의 'Blowin' In The Wind'와 비슷하다. 밥딜런은 평화를 바라는 마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버렸다는 걸 알 수 있을까?"(how many deaths will it take till he knows That too many people have died?)라고 노래했다.


그런데 보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지가 없다. 노래 가사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너희'와 'friend'다. 이것을 통해 방탄소년단은 또래 친구들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고 싶은 대상을 밝히지 않음으로써 '봄날'을 듣는 사람에게 각자 보고 싶은 대상을 떠올리게 하는 건 이들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다. 개인적 수준의 대상, 즉 부모형제나 연인, 친구를 보고 싶은 대상으로 넣고 들어도 무리가 없다. 사회적 수준 특정 집단이나 국가여도 상관없다. 또 지구상에 없는 상상의 대상이어도 상관없다.


우리는 희망을 가져본다. 겨울은 지날 것이고 봄이 오면 꽃이 필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밤을 새우면 그날이 올 것이다. 그의 마음이 변하지 않고 나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곳에 계속 머물러있다면 '우리'는 '너희'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추운 겨울 끝을 지나
다시 봄날이 올 때까지
꽃 피울 때까지
그곳에 좀 더 머물러줘, 머물러줘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