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일의 썸머>는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는 톰과 취향을 공유하고 싶은 썸머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어느 날 톰과 썸머가 레코드숍에서 데이트를 할때, 썸머는 '옥토퍼스 가든'이 비틀즈 최고의 노래이며 비틀즈 멤버 중에서 링고 스타를 제일 좋아한다고 얘기한다. 톰은 '링고 스타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라고 말하며 썸머의 취향을 무시한다. 비틀즈 멤버 중에 링고 스타를 좋아하고 비틀즈 노래 가운데 '옥토퍼스 가든'을 최고의 노래라 생각하는 사람은 톰의 말대로 거의 없다. 비틀즈 팬은 보통은 존 레넌이냐 폴 매카트니냐로 갈린다. 조금 특이하거나 있어 보이는 팬은 조지 해리슨을 좋아한다. 하지만 톰의 말대로 링고 스타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비틀즈 팬은 거의 없다.
일반 팬은 그렇다치고 그럼 드럼 연주자 중에 링고 스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엄청난 테크닉을 발휘하는 재즈 드러머(Buddy Rich, Max Roach, Gene Krupa)를 제외하고 락 드럼에 한정해서 얘기해도 링고 스타는 John Bonham(Led Zeppelin), Keith Moon(The Who), Neil Peart(Rush), Dave Grohl(Nivana), Stewart copeland(Police), Ginger Baker(Cream), Mitch Mitchell(Jimi Hendrix Experience), Nick Manson(Pink Floyd) 보다 먼저 떠올리기 쉽지 않다. 비틀즈 음악에서 드럼 연주가 멋있거나 드럼 연주 때문에 듣는 곡도 없다.
그런데 링고 스타는 전문 음악 잡지 선정 베스트 드러머 10위에 든다.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그럴만한 게 링고 스타의 드럼 연주에 대해 두 가지 오해가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비틀즈 데뷔 앨범을 링고 스타가 연주하지 못하고 전문 세션맨인 앤디 화이트가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매니저인 브라이언 앱스타인은 완벽하게 앨범을 만들고 싶었는데 링고 스타의 드럼 연주 실력에 의문을 품었다. 정식 멤버를 놔두고 세션맨에게 연주를 맡긴 브라이언 앱스타인도 대단하지만 그걸 참아내는 링고 스타도 대단하다. 아무튼 링고 스타의 드럼 연주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두 번째는 폴 매카트니가 링고 스타의 드럼 연주를 놀렸고 자신이 더 잘할 수 있다며 레코딩까지 한 사실이다. 'Back in the USSR'는 폴 매카트니가 드럼을 연주했다. 화이트 앨범은 비틀즈 해체 2년 전이다. 이는 베이스를 맡은 폴의 드럼 연주가 드러머인 링고보다 못할 게 없다는 얘기지만 사실 링고 스타의 드럼이 형편없는 게 아니라 폴이 대단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러가지 사실에도 불구하고 링고 스타는 분명 훌륭한 드러머이다. 링고 스타는 락 드럼의 기본을 정리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 이전에는 락 드럼을 이렇게 연주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얘기다. 우리가 지금 듣는 록음악에서의 드럼 연주는 링고 스타로부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기본 비트에 충실하고 절제된 필인은 링고 스타의 장점이다. 비틀즈 음악을 들으면 드럼 연주의 밸런스가 좋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비틀즈의 명곡은 화려한 테크닉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훌륭한 밸런스에서 태어난 것이다. 비틀즈는 거의 모든 장르의 효시다. 사이키델릭과 헤비메탈도 비틀즈로부터 시작됐다. 거기에 락앤롤, 블루스, 포크에 거의 장르를 규정지을 수 없는 음악들도 꽤 많다. 이 모든 음악에서 링고 스타는 드럼을 통해 비틀즈 음악을 만들어냈다. 장르는 모든 멤버가 만들어내지만 드러머가 가장 큰 역할을 한다. 링고 스타의 정확한 박자와 항상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곡을 채웠기 때문에 비틀즈의 음악이 훌륭한 것이다. 만약 화려한 테크닉을 구사한 드러머가 비틀즈의 드러머였다면 과연 지금의 비틀즈는 존재할 수 있었을까?
비틀즈 멤버 가운데 연주와 노래 실력으로 베스트 10 언저리에 선정되는 멤버는 링고 스타 밖에 없다. 물론 비틀즈는 노래와 연주가 아니라 음악성으로 평가받은 밴드이니 이렇게 비교하는 게 맞지 않지만 4명의 멤버 가운데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된 링고 스타에 대해 최소한의 평가를 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무엇보다 링고 스타를 존경하는 이유는 매니저에게 그렇게 당하고 데뷔 앨범에서 세션맨에게 연주 자리를 내주고 옆에서 탬버린을 연주하면서도, 그리고 멤버들에게 무시를 당하면서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고 스스로도 훌륭한 연주자가 아님을 인정하면서 열심히 노력했다는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