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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도 맞장구를 쳐줘야 낸다

by 조작가

대개 여자가 남자에게 자신이 삐쳐있다는 시그널을 보낸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자는 그걸 눈치채지 못한다. 그래서 남녀 간에 이런 대화는 흔하다.

남 : 내가 잘못했어

여 : 뭘 잘못했는데

남 : 다

여 : 내가 이래서 싫어

직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는 술 한잔하면서 털어버릴 만큼 친하지 않은 사이이거나 서로 점잔을 빼야 하거나 할때이다. 직장도 남녀관계처럼 밀땅이라는 게 있다.

ㄱ과장은 우리 회사가 야심 차게 준비한 프로젝트를 위해 전문 회사에서 파견받은 전문가이다. 최근 ㄱ과장은 개인의 입지가 애매하다는 이유로 내부 업무보다는 외부 활동에 더 관심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 조직보다는 개인의 생존을 내세운 것이다. 그 바람에 내부 업무는 남은 우리가 맡아서 하고 있다. 임시방편이고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일을 정리한 뒤에도 ㄱ과장은 출근을 꼬박꼬박하면서 여전히 자기 개인 일만 하고 있다. 화가 날 수밖에 없는데 더 화가 나는 건 ㄱ과장은 이 상황에 대해 전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행동한다는 것이다. '피해자'인 우리만 뒤에서 '씩씩'거릴 뿐이다.

ㅇ부장 때문에 화가 났다. 내가 만든 일로 큰 자리가 마련되어 ㅇ부장이 참석하게 됐는데 ㅇ부장은 나에게 고맙다거나 또는 내가 참석하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더욱 화가 난 건 아무 역할도 없었던 L 부장의 참석이다.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화가 났다는 것에 대해 ㅇ부장에게 시그널은 보내야 했다. 우선 o 부장이 나에게 지시를 내리면 그전에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던 것과는 다르게 '네? 뭐라고요'라며 인상을 쓰며 대답한 것이다. 두 번째는 늘 같이 먹던 점심도 같이 하지 않고 혼자 따로 먹었다. 또 매일 오후에 o 부장과 함께 하는 '음료수 타임'도 동행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ㅇ부장은 내가 화가 나 있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별 반응이 없자 나는 제풀에 지쳐 삐치기를 일주일 만에 접어버리고 말았다.

K와의 관계가 최근 좋지 못하다. 날 화나게 만든 일이 있었다. 그래서 난 그가 무슨 부탁을 해오면 거절하기로 며칠 전부터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거절하는 장면을 몇 번씩 연습했다. 그런데 그는 나에게 당연히 해야 할 제안을 하지도 않았다. 나의 거절 연습은 그냥 마음속에서만의 외침으로 끝나 버리고 말았다.

화도 받아주지 않으면 고장난명(孤掌難鳴)일 뿐이다. 오래전 여자 친구의 삐침을 몰라줬던 죄를 지금 다 받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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