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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기심

by 조작가

지난 한 주 북쪽에서는 핵무기 때문에, 남쪽에서는 여중생 폭행 때문에 전술핵을 배치해야 하느냐와 이참에 소년법을 폐지해야 하느냐로 시끄러웠다. 나라가 전쟁터가 되고 폭력 천지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내 관심을 끈 이슈는 당장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니지만 내가 사는 동네에서 벌어진 일이다. 먼 곳에서 일어난 심각한 문제보다 가까운 곳에 일어난 작은 일이 더 관심을 끄는 건 인지상정


지난 5일 강서구(내가 사는 바로 옆 동네)에 특수학교 신설을 위한 2차 주민토론회가 열렸다. 특수학교를 설립하려는 곳은 원래 초등학교가 있던 자리로 학교 부지로만 쓸 수 있는 곳이다. 그럼에도 지역구 의원이 지난 선거에서 이곳에 한방병원을 설립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그래서 설립을 찬성하는 장애 아동 및 일반 학부모와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 간의 토론(?)이 열린 것이다.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강서구에 혐오 시설이 많은데 왜 또 혐오 시설을 짓느냐, 한방병원을 세워 지역 경제를 살리고 싶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속내는 뻔하다. 집값 때문이다. 설립을 찬성하는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학습권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서울 지역 장애 아동이 12,000명이 있고 이들을 교육할 특수학교가 4000여 명 밖에 수용하지 못한다. 특히 강서구는 장애 아동의 수가 서울 25개 지자체 중에 가장 많은데도 불구하고 특수학교가 1개뿐이어서 인근 지자체로 3시간씩 통학하는 불편을 감수하고 학교를 다녀야 한다.


한쪽은 집값이라는 경제적 이유를, 다른 한쪽은 헌법이 보장하는 학습권을 각각 주장하고 있다. 토론회니까 충분히 자기 입장을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토론회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설립 반대를 주장하는 주민들 앞에 장애 아동 부모들이 무릎 꿇고 호소하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주민들은 그들에게 쇼하지 말라고 막아섰다. 이 동영상을 본 많은 네티즌들은 분노했고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온라인 서명에 동참했다. 장애 아동을 둔 일이 죄도 아닐뿐더러, 특수학교가 혐오 시설이거나 그 때문에 집값이 떨어진 사례도 없다. 사람들은 왜 자기의 작은 이익에 그토록 집착하고 전체를 보지 못하는지 안타깝다.


한마을에 아이 하나를 교육하기 위해서는 마을 사람 모두가 참여해야 한다고 한다. 아이가 곧 공동체의 미래이기 때문에 아이들을 잘 교육하는 건 공동체 발전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공동체보다는 나의 작은 이익에 더 관심이 많다. 전체 공동체를 위한 것이라도 나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준다면 기를 쓰고 막는다. 한 사회의 발전 수준은 각 개인이 공동체를 위해서 얼마나 희생할 줄 아느냐에 달린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의 발전 수준은 결코 높지 않다.


내가 사는 아파트 10층에 자폐아 학생이 살고 있다. 가끔 그 자폐아 학생과 그의 부모를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다. 불과 몇 초 밖에 안 되는 시간이지만 괴성을 지르고 나한테 덤벼들 거 같은 생각에 빨리 벗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었다. 나는 자폐를 겪고 있는 그 학생이 다행히 운이 좋아 강서구에 하나밖에 없는 특수학교에서 공부를 하는지 아니면 멀리까지 가서 공부하는지 관심조차 없었다. 그동안 이 문제에 관심 없었던 것을 반성하고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온라인 서명에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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