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에 시작해서 11시 반이 되어서야 합주가 끝났다. 남은 멤버 몇 명과 편의점에 들어가 캔맥주 하나씩 마셨다. 실없이 웃었다. 그렇게 웃는 나를 보니 웃기다. 열심히 연주하고 연주로 달궈진 몸을 시원한 맥주에 식힐 수 있다는 게 고마워서 그랬나 보다. 우리는 마지막 지하철에 올라탔고 끊임없이 음악 얘기를 나누었다. 새벽 1시가 다 돼서 집에 들어왔다.
다음날 평소보다 조금 늦게 눈을 떴다. 정신없이 서두르다 늘 들고 다니는 서류 가방 대신 스틱 가방을 양복 위에 맸다. 스틱 가방은 검은색으로 직사각형 모양이다. 가방 중간 아래에 동그란 패드를 넣을 수 있는 주머니가 있다. 들 수도 있고 맬 수도 있는데 드는 것보다 매는 게 덜 이상할 것 같아 맸다.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어울리지 않을 뿐 잘못된 건 아니다. 그래도 신경은 쓰였다. 사람들은 나를 드러머가 양복을 입었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직장인이 드럼 가방을 멨다고 생각할까?
약속 장소에 도착하고 보니 양복과 드럼 가방의 앙상블이 어울리지 않는 게 눈에 띄었다. 그래서 동료에게 물었다.
나 : 이거 드럼 가방처럼 보여요
동료 : 네. 누가 봐도 드럼 가방인데요
이런 중요한 자리에 양복 입고 드럼 가방을 메고 나타나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내 스스로 이건 드럼 가방같이 생긴 서류 가방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내가 든 가방이 드럼 가방같이 생긴 서류 가방이든 서류 가방같이 생긴 드럼 가방이든 아무 관심도 주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