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혼자 밥 먹기), 혼술(혼자 술 마시기), 혼영(혼자 영화 보기), 혼행(혼자 여행하기)이 트렌드다.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싱글 라이프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카페와 음식점, 술집은 1인 좌석이 따로 있다. 혼자 뭘 해도 어색하지 않을 뿐더러 욜로(YOLO)스러움이 있어 멋져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혼자 하는 게 꼭 좋아 보이진 않는다. 우리 회사 구내식당에 항상 혼자 오는 여자가 있다. 그녀는 같은 자리에 앉고 같은 시간에 온다. 기껏해야 구내식당인데 그녀는 앞치마까지 두르고 샐러드바에서 각종 야채와 드레싱까지 곁들이며 반찬도 한 차례 리필해서 성찬(盛饌)을 즐긴다. 그걸 혼자서 말이다. 남들의 이상한 시선을 그녀도 아는지 자신의 스마트폰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척한다. 그녀가 왜 점심을 구내식당에서 성찬으로 혼자 즐기는지 궁금하다. 직장인에게 점심은 파트너나 직장동료와 함께 하는 근무의 연장이라고 봤을 때 혼밥은 루저(looser)처럼 보인다.
집 근처에 스몰 비어 집이 생길 무렵 혼술을 즐긴 적이 있었다. 집에서도 가끔 혼술을 한다. 하지만 술이라는 게 술 자체가 주는 즐거움보다는 술을 함께 하는 자리가 주는 즐거움이 더 크기 때문에 혼술은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는 할 이유가 없다. 또 혼술을 하면 말없이 빨리 마시기 때문에 훨씬 빨리 취한다. 한때 혼영도 많이 했지만 이 역시 초라하기 그지없다. 각자의 취향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고 시간도 맞추기 불편해서 혼영이 편하지만, 영화를 본다는 건 영화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앞뒤로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는 등 뭔가를 같이 하는 문화생활이다. 혼영을 하게 되면 영화만 보고 할 게 없다. 혼행은 20대 중반 즈음 혼자 여행 한 번 하고 나서는 다시는 안 한다. 혼자 하는 여행은 남에게는 낭만처럼 보일지 몰라도 궁색(窮色)하기 그지없다. 막상 할 것도 없고 어설프게 놀다가 몸만 아파서 돌아오기 십상이다.
혼자 하는 게 트렌드라고 하지만 기실(其實) 혼자 하는 게 더 좋아서 혼자 한다기보다는 혼자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혼자 한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터다. 가끔 외로움을 즐기는 내 성향 탓에 나도 한때 혼자 뭘 해보는 걸 좋아했지만 요즘은 되도록이면 같이 하려고 노력한다. 같이 하는 게 더 즐겁기 때문이고 유익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직장인들 사이에 독서토론이 유행이다. 책 읽기를 도와주는 회사도 있다. 책을 정하고 함께 읽을 사람을 모집한 뒤에 하루에 정해진 분량을 같이 읽고 간단한 감상을 올리는 식이다. 오프라인 모임을 적극적으로 하는 책 읽기 모임도 많은데 이 경우는 네트워크를 쌓는 목적도 있다. 책 읽기 모임에서 정해진 분량을 쫓아가다 보면 어느새 한 권의 책을 다 읽게 된다. 서로의 감상을 나누면서 책에 대한 이해도 높일 수 있다. 비용을 지불해서인지 참여도도 높다. 책 읽기는 지인끼리 해봐도 괜찮다. 읽고 싶은 책을 정하고, 진도를 같이 해서 읽은 다음, 만나서 또는 온라인에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 몇 차례 읽다가 포기한 책을 정해 읽으면 성취감도 높다. 음악을 같이 듣는 것도 좋다. 한때 음악 감상 동호회가 꽤 유행했던 적이 있다. 서로 좋아하는 음악을 공유하면서 듣는 게 혼자 음악을 듣는 것보다 즐거움이 크다. 그동안 잘 알고 있던 음악도 누군가 추천해주면 뭔가 의미가 더해져서 그런지 새롭게 들리고 추천자의 에피소드까지 곁들여지면 추천자와 음악이 하나가 되어 각인된다. 좋은 영화를 같이 보는 것도 여행을 같이 하는 것도 혼자 하는 것보다 같이 하는 게 훨씬 즐겁다. 그들만의 추억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내 경우 같이 하려는 것보다 혼자 하려고 했었던 것에서 요즘은 혼자 하려고 하기보다는 같이 하려고 노력한다. 앞서 얘기한 여러 가지 유익함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것을 시작할 때 누군가 같이 해보려고 하고 정 같이 할 수 없을 때 혼자 즐기는 것을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