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쉽게 믿고 웬만하면 좋게 보는 편이다. 그 때문에 안 좋은 일도 경험했다. 10년 전 M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능력은 부족해도 나를 의지하고 잘 따르던 후배가 있었다. 나도 그 후배를 잘 챙겨줬다. 그런데 뒤에선 내 험담을 하고 다닌 모양이다. 다른 후배가 내 험담을 듣고 나에게 그 후배 조심하라고 충언을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후배를 똑같이 대했다. 결국 그 후배에게 뒤통수를 세게 맞고 말았다.
이제는 좋은 사람-나쁜 사람, 함께 할 사람-함께하지 못할 사람, 오래 할 사람-금방 떠날 사람, 믿을 만한 사람-배신할 거 같은 사람인지가 조금씩 보인다. 사람 보는 눈이 생기면 섣부른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실망하거나 상처 받을 일이 적고 서로 인연이 아니라 생각하면 빨리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의사결정 비용도 절약되서 좋다.
사람 잘 보는 '천리안'을 가진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신기하게도 A는 얼마 못 갈 사람, B는 좋지만 가족에 메일 사람, C는 착하지만 우유부단한 사람, 이런 식으로 한눈에 사람을 파악하는 신통한 능력을 갖고 있다. 다. 그가 말한대로 일이 벌어지는 걸 여러번 봤다. 반면에 나는 그러지 못한 편이여서 그 친구 입장에서는 내가 답답해 보였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자 나에게도 조금씩 사람 보는 눈이 생겼다. 경험 덕이다. 과거의 데이터들이 쌓이면서 어떤 유형의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지가 보인다. 밴드 오디션을 보러 오는 사람의 경우 그 사람의 연주하는 태도로 어림짐작할 수 있다. 뒤풀이에서 몇 마디 나누면 더 확실해진다. 단톡방에서 주고받는 말은 그의 행동을 예측하는 데 좋은 데이터가 된다. 단톡방에서 말의 양이 줄어들 때, 중요한 시점에서 대화에 참여 안 할 때, 선택의 순간에 가만히 있을 때는 위험하다는 시그널이다. 그동안 30명 이상의 사람을 경험했다. 밴드가 사람 보는 눈을 기르게 하는 학교가 된 셈이다. 여기에 인간관계를 학문으로 다루는 사회학이란 이론적 백그라운드가 더해진다. 사회인구학적 특징만으로 행동의 반 이상이 예상되며 그 나머지도 첫 만남에서 느껴지는 태도와 말로 유추가 가능하다. 독서도 사람 보는 눈을 기르는데 경험과 이론만큼이나 중요하다. 최근 사람 보는 눈이 좋아진 데는 독서량과 무관하지 않다.
사람 보는 눈이 조금 생겼지만 마냥 기쁘진 않다. 말이 좋아 데이터고 이론이지, 결국 사람을 편견의 틀 안에 가두는 게 아닌가 싶어서다. 우리가 '꼰대'라 부르는 어른들은 자기 경험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의 다른 말이다. 내 주변에 관심이 많고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도 상대방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곤 한다. 그러한 판단이 맞을 때 자기의 판단을 더욱 공고화시키고 경험이 이론화되면서 편견은 강화된다. 이 점을 경계해야 한다. 내 경험이 한정된 것이고, 내 이론이 틀린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 새로운 걸 받아들여야 '진짜' 사람 보는 눈을 갖게 된다.
편견 없이 사람을 보고, 왠지 모를 기대를 품었던 때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조금은 드는 이유는 무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