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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게 생겼네

by 조작가

음악 프로그램 '너목보'를 즐겨보는 편이다. '너목보'는 참가자 중에 노래 잘하는 사람과 음치를 고르는 프로그램인데, 오로지 겉모습과 립싱크 동작만 보고 판단해야 한다. 음치인 줄 알았는데 노래를 잘하면 의외성에 놀라고 노래를 잘하는 줄 알았는데 음치이면 재밌다. 그러니까 어떤 선택을 해도 관객의 공감과 호기심과 재미를 불러일으킨다. 문제는 노래 잘하는 것과 음치를 오로지 겉모습과 립싱크한 행동으로 맞추는 거에 있다. 구강 구조가 어떻고 스타일이 어떻고 하면서 노래 잘하는 사람과 음치를 구별하려고 하지만 맞추기가 힘들다. 맞췄다 해도 그건 운이지 정말 두 집단이 구별되는 건 아니다. 어떻게 노래 잘하는 것과 못하는 걸 겉모습으로 판단할 수 있겠는가? 결국 노래 잘 할거 같이 생긴 사람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술 잘 마실 거 같은 사람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술은 순전히 몸속에 술을 해독할 수 있는 효소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가 그 사람의 몸속을 들여다 볼 수 없으니 당연 그 사람이 술을 잘 마시는지 술을 잘 못 마시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술을 잘 마실 것 같은 사람이 있다고 믿는다. 술을 잘 마실 것 같은 사람이 술을 못 마시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술을 못 마실 것 같은데 술을 잘 마시는 경우도 있다. 예상했던 경우가 나오면 '그래 맞아'라고 확증 편향을 갖게 되고, 틀리게 되면 그 의외성에 재미를 느낀다.


나는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려고 하는 것에 희생자이기도 하다. 나는 공부를 못할 것 같이 생겼던 모양이다. 초등학교 5년 때 담임 선생님은 반에서 하위 10등 안에 드는 친구를 상위 10등 안에 드는 친구들과 각각 짝을 지어줘 과외 공부를 시키게 했다. 내가 하위 10등에 있는 친구를 공부시켜주는 상위 10등에 포함된 것을 보고 반 아이들이 모두 놀라했다. 고등학교 때 우열반을 나누어 수업을 진행했었는데, 내가 우반에 들어간 것을 본 친구들이 놀라 했었다. 따지고 보면 그리 놀랄만한 것도 아니다. 초등학교는 90명 중에 10명 안에 든 거니 겨우 상위 11%이고 고등학교 우열반은 반으로 나눴으니 50% 안에 든 것뿐이다. 그런데도 내가 11%와 50%에 포함된 것을 보고 친구들이 놀라했다는 게 되려 나를 놀라게 했다. 나는 군대를 3년 현역으로 다녀왔다. 그것도 제대로 된 데를 다녀왔다. 대한민국에 한 손가락 안에 드는 곳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를 보고 면제 아니면 방위 아니냐고 묻는다. 전방 교육사단에 다녀왔다고 해도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가 100킬로 행군과 유격을 어떻게 받았는지를 얘기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으니 나로서는 억울할 뿐이다.

사람들은 겉모습만 보고 그 사람이 뭘 하게 생겼다고 판단하는데 잘 안 맞는다. 한번 겉모습을 보고 판단한 게 맞으면 확증편향을 갖게 된다. 모수가 커지면 결국 50%에 수렴하게 되는데, 이는 눈 감고 찍는 거랑 똑같은 확률일 뿐이다. 연애를 잘할 거 같이 생긴 사람, 돈을 잘 벌거같이 생긴 사람이 따로 있지 않다. 하지만 어떤 일을 잘하다 보면 그 일에 적합한 스타일을 갖게 되는 경우는 있다. 그러니까 뭘 잘할게 생겨서 잘한 게 아니라 그 일을 하다보니 잘하게 되고 그 일에 적합한 모습으로 변하게 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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