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곡보다 사람

by 조작가

신곡을 정하고 두 번째 합주를 진행했다. 난이도가 조금 높은 곡이었지만 그럭저럭 해냈다. 다른 곡보다 어려웠지만 잘만 하면 멋져 보일 수 있는 곡이라 열심히 연습했다. 재결성 밴드의 9번째 선곡에 대한 이야기다. 세 번째 합주를 위해 어떻게 하면 곡을 완성할지를 고민하고 있던 차에 어느 날 보컬이 톡을 보냈다.

보컬 : 기타가 야심 차게 추천한 곡인데, 내가 부르기에 역부족인 것 같아서, 계속할 수 있을지 생각 중이야. 어떻게 생각들 하는지

글에서 고민한 흔적을 느껴졌다. 여러 번 썼다 지웠다 했을 것이다. 나는 지체 없이 이렇게 답했다.

나 : 곡보다 멤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보컬 : 곡보다 멤버라는 말은 제가 따로 적어 놓겠습니다. 멋져^^

직장인 밴드에서 가장 조율하기 힘들고, 팀이 와해되는 이유 중 하나가 선곡이다. 각자 하고 싶은 곡이 있는데 이것을 정하는 게 대통령 뽑는 것보다 더 어렵다. 곡을 정할 때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민주적인 방식과 독재적인 방식. 민주적인 방식은 다시 두 가지 방식이 있다. 각자 하고 싶은 곡을 하는 것과 투표에 의해서 정하는 방식이다. 각자 하고 싶은 곡을 할 경우 다른 멤버들은 테크닉적으로 어렵지만 않으면 해야 한다. 그래야 자기도 하고 싶은 곡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표에 의해 정하는 방식은 누군가 곡을 제안하면 멤버끼리 상의해서 결정하거나 그래도 결정이 안 나면 투표에 의해 결정하는 방식이다. 일면 민주적 의사결정 방식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의사결정 과정은 불만이 없지만 결과는 그렇게 못할 때가 많다. 우선 선곡이 들쭉날쭉하고 또 정한 곡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독재적인 방식은 리더가 무조건 곡을 정하는 경우이다. 의사결정이 빠르고 선곡의 일관성이 있지만 멤버들이 리더를 따르는 듯해도 뒤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

직장인 밴드 생활 10년이 넘어서야 알게 됐다. 선곡보다 더 중요한 것은 멤버들이라는 것을. 그 이전 10년간은 선곡으로 인해 갈등과 와해를 반복했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곡을 정하는 문제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이는 기업으로 치자면 돈보다 직원이 더 중요하다는 말과 같고 가정으로 치자면 자녀에게 좋은 대학보다 건강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모든 일을 '선곡보다 사람이다'라는 자세로 대한다면 일도 잘되고 행복해질 거란 생각을 해봤다. 이제 겨우 직장인 밴드에서 느껴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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