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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Aug 15. 2020

말의 무거움을 알아야 한다

사람을 살리는 말과 죽이는 말

子曰 : 古者言之不出, 恥躬之不逮也
자왈 : 고자언지불출, 치궁지불체야

 

 공자가 말했다. “옛사람들이 말을 가벼이 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이뤄내지 못한 것을 수치로 여겼기 때문이다.” - 《논어》이인


 요새 ‘말’이 문제다. 일부(아주 일부) 유튜버들의 거짓에 속은 구독자들도 분노하고 화를 냈다. 다른 유튜버들이 문제의 유튜버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그야말로 말과 말의 ‘혈전’이다. 이렇게 말은 무섭다. 말을 잘못하고 가볍게 여긴다면 그 결과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진 것일까?


 그것은 ‘말’을 파는 직업을 가진 사람, 그리고 그 ‘말’을 들으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해소하는 소비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방송에서 들을 수 없는 자극적인 표현과 설정에 일종의 해방감과 자유를 느끼게 된다. 유튜브 콘텐츠를 생산하는 생산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소비 트렌드에 맞춰서 재치 넘치는 말을 하고, 때로는 통쾌한 표현을 날려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들이 열광하고, 생산자들은 엄청난 돈을 번다. 더군다나 광고주까지 거기에 편승해서 후원하니 오죽하겠는가?


 사실 인간으로서 이러한 유혹을 피하기는 힘들다. 나의 세치 혀로 한 달에 몇 백, 몇 천만 원의 수입을 올리게 되니 이만큼 수지 좋은 장사가 어디 있겠는가? 물론 수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인기 유튜버가 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와 사전 스크립트도 필요하다. 계획된 콘티에 따라서 움직여야 그만큼 더 많은 시청자들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말에는 희로애락이 있다. 누군가는 ‘말’로서 돈을 벌고, 또 누군가는 ‘말’로서 망한다. 화려한 언어 기술로 주의를 끌어서 성공한 사람도 결국 그 말에 진실성이 없다면 사람들은 금방 외면한다. 막상 그 사람의 말을 들을 때는 그 기술에 현혹되어서 잘 모르고 있다가 뒤돌아서 생각하면 왠지 찜찜한 마음이 든다. 속았다는 기분도 든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면 그것은 진실한 말이 아니다. 내가 지키지도 못할 말을 하는 사람이다.

출처 : Pixabay

 여러분은 ‘과묵하다’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어사전으로는 “말이 적고 침착하다”는 의미다. 예전에는 과묵하다는 것이 곧 듬직하다는 의미도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과묵한 사람들을 좀 더 신뢰하고 믿었다. 하지만 영상매체가 발전할수록 과묵한 사람들이 별로 각광을 받지 못한다. 오히려 답답하거나 지루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는 신뢰를 주는 한 마디보다는 무지개처럼 현란한 말재주를 갖고 있는 사람이 각광을 받는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발표를 하거나 회의 중에 입을 다물고 있는 것보다는 한 마디라도 더 해서 나의 존재를 보여줘야 한다. 만약 조용히 있다면 그 사람의 존재를 잘 못 느낄 것이다. 서구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말을 참 많이 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변이 좋은 것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경청’이 중요하다. 화려한 말 기술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은 좀처럼 말할 틈을 주지 않는다. 0.5초라도 틈이 나면 끼어들기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다. 함께 대화를 하고 나면 피곤해진다. 말을 이해하느라 정신이 없고, 또한 질문을 하고 싶어도 그럴 틈이 없다. 본인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고 끝낸다.


 제일 좋은 것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듣고 경청하면서 필요할 때 적기 적시에 질문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의견을 확실히 밝힌다. 또한 가벼운 말보다는 묵직한 말을 날려야 한다. 그것은 즉흥적으로 내가 지어낸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과 사상이 고스란히 드러난 말이어야 한다. 공기처럼 가벼운 말은 그냥 날아서 흩어져 버린다. 사람들의 마음에 남는 말을 해야 한다.


 따라서 말을 할 때는 ‘내가 정말로 믿는 가치인지’ 스스로 확인해야 한다. 사실 내가 믿는 것과 다른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서 독서보다 SNS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하루 1~2시간씩 SNS를 꾸준히 하고, 독서는 10분밖에 안 하거나 또는 아예 안 하면서 사람들에게는 매일 1시간씩 독서를 했다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다. 그러면서 독서가 나의 인생을 바꾸고, 또한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는다. 그 사람을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면서 유명하게 되지만 그것은 ‘허언’ 일뿐이다.


 물론 목표를 높게 잡는 것은 중요하다. 그만큼 좋은 결과를 얻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표는 내가 지켜야 할 ‘약속’이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최선을 다해서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면 그것은 괜찮다. 그러나 애초부터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나의 능력을 뛰어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나 자신을 속이는 행위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출처 : Pixabay

 나는 주로 북 튜버 분들이나 자기 계발 관련 거장 분들의 유튜브를 시청한다. 아침이나 저녁에 산책을 하면서 좋은 에너지를 주는 분들의 유튜브를 들으면서 나도 힘을 얻는다. 오늘은 어떤 여행 전문 유튜버 분의 영상을 시청했다. 남편은 이탈리아에서 여행 가이드를 하는데 지금 실직 상태다. COVID-19 때문에 관광객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이 부부는 자비로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코스를 개발하고, 이를 유튜브에 담았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남편과 아내는 긍정의 에너지를 잃지 않고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고, 마음이 뭉클했다.

 “서로를 배려하는 따스한 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말은 이렇게 커다란 힘과 에너지를 갖고 있다. ‘말’은 사람을 속이는 도구가 되고, 사람을 죽이는 살인무기도 된다. 하지만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거나 힘을 주는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말을 잘해야 한다. 그렇다고 ‘과묵’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를 벗어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다. 거짓으로 얼룩진 말은 결국 생명을 잃는다. 주위의 사람들도 알아차리고, 무엇보다 나의 영혼을 갉아먹는다. 나의 생각이 오히려 ‘말’에 사로잡힌다. 생각이 말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주객이 전도가 된다. ‘말’을 먼저 하고 생각하는 버릇이 생긴다.


 무엇보다 ‘말’의 의도가 중요하다. 남을 위하는 ‘말’과 나를 위한 ‘말’은 다르다. 말에도 사랑과 진심이 있다. 그런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 나의 생각을 잘 정리하고, 거짓된 욕심에 빠지면 안 된다. 공자께서 말한 “말이 가볍지 않다는 것”의 의미를 잘 생각해 보자.


 강원국 작가는 최근《나는 말하듯이 쓴다》라는 책을 냈다. ‘허언’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에게 만약 그 사람의 말을 그대로 글로 옮겨서 책으로 선물을 주면 어떨까? 그 사람은 뿌듯하게 자신의 말을 옮긴 글을 읽을 것인가? 아니면 부끄러움을 느낄 것인가? 다시 한번 나의 ‘말의 무게’를 생각해 보자. 나의 말에는 ‘진심’이 있는가? 아니면 ‘거짓’을 버릇처럼 담고 있는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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