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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Aug 18. 2020

지혜로운 사람인가? 어진 사람인가?

'물'의 지혜와 '산'의 너그러움 

 子曰 :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
 자왈 : 지자요수 인자요산 지자동 인자정 지자락 인자수 
 공자가 말했다.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하며, 지혜로운 자는 동적이고 어진 자는 정적이며, 지혜로운 자는 즐겁게 살고 어진 자는 장수한다.” 


 ‘지자요수 인자요산’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의미다. ‘물’은 끊임없이 흐른다. ‘지혜롭다’는 것은 물처럼 흘러야 한다는 의미다. 한 곳에 고이면 안 되고, 다양한 상황에 맞춰서 변해야 한다. 정해진 모습이 없다. 늘 새로운 곳을 찾아서 나아가야 한다. 


 반면 산은 멈춰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은 그 자리 그대로다. ‘인仁’이라는 것은 그래야 한다는 의미다. 산은 항상 그 자리에서 꾸준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나무, 꽃, 동물, 곤충 등에게 안식처를 주고 포용한다. 이처럼 사람도 그렇게 대해야 한다. 그 중심에는 ‘사랑’과 ‘자비’가 있다.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인가? 아니면 어진 사람인가? 둘 다인가? 


 사실 지혜롭고 인자하다는 것은 거의 동격으로 쓰인다. ‘지’가 동적이고, ‘인’은 정적이지만 둘은 서로 관계가 깊다. 지혜로운 사람은 남을 배려하고 겸손한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진 사람이 되고, 어진 사람도 삶의 경험과 배움을 통해서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용이하다. 그렇다면 ‘지’가 무엇인지, 그리고 ‘인’이 무엇인지 좀 더 알아보자. 


 우선 지혜와 지식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예전에는 지식이 있으면 당연히 지혜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공부를 했으니 그만큼 삶에 대한 식견도 높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아무리 가방끈이 길고 많은 책을 읽었더라도 자식의 학문적인 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봤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는 강한 집착을 보이고, 다른 생각이나 이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비난한다. 

출처 : Pixabay


 건전한 비평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지나칠 때가 문제다. 그럴 때는 과연 저 사람이 쌓은 지식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지 않고, 상대방을 몰아붙이고 함부로 대하는 것이 과연 지식인인가? 아무리 논어, 맹자, 대학 등을 달달 외우고 깊게 공부했다고 해도, 그것이 자신의 몸속에 스며들지 않았다면 과연 그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식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학창 시절 배운 것들을 생각해 보자. 수학, 과학, 국어, 외국어 등 수많은 공부를 했지만 지금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가끔 아이들 공부를 봐주면서 예전의 기억이 흐릿하게 생각날 뿐이다. 


 하지만 지혜는 ‘현명하게 생각하고 대처하는 방식’이다. 내 머릿속에 든 것과 상관없이 주어진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게 만든다. 꼭 지식을 쌓지는 않았더라도 삶의 지혜를 쌓은 ‘현자’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자들은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 처절하게 삶을 살아오신 부모님이 될 수 있고, 주변에 이웃도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지식과 지혜는 엄연히 다르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가 말한 바와 같이 지혜는 인생의 경험이 함께할 때 나타난다. 


 “과학은 정리된 지식이다. 지혜는 정리된 인생이다.” - 임마누엘 칸트
출처 : Pixabay



 지혜는 도서관에서 책만 읽거나 공부한다고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엄청난 지식을 얻을 수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지혜가 아니다. 지혜는 지식을 토대로 사색하고 고민하고 또한 경험을 통해서 얻어진다. 수많은 실패를 통해서 얻게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는 중요하다. 공자가 지혜로운 자는 ‘동적’이라고 말한 것은 그만큼 움직이면서 경험을 하고, 적극적으로 지식을 습득해야 함을 의미한다. 심지어 〈인디아나 존스〉시리즈 영화에서 존스 박사도 고고학을 제대로 배우려면 도서관에서 나가야 한다고 학생에게 말했다. 그만큼 발로 뛰는 공부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인仁’은 어떠한가? 자비는 타고난 것일까? 수많은 성인처럼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인자함을 타고난 사람도 있지만 역시 ‘배움’과 ‘경험’을 통해서 체득할 수 있다. 공자가 수많은 제자를 통해서 ‘인’을 설파한 것도 결국 사람도 배움을 통해서 어진 마음과 사랑을 배울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종교도 마찬가지다. 설교를 통해서 ‘사랑’의 마음을 심어주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렇게 어진 마음을 가르쳐도 잘 듣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많다. 마치 공자가 14년 동안 천하를 주유하면서 제후들에게 통치의 이념으로 ‘인仁’을 강조했지만 그들이 듣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만큼 ‘인’이라는 것은 듣기는 쉬워도 실제로 체득하기는 힘들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너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좋은 말씀을 듣고도 실제 이것을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진심으로 사랑의 정신을 구현하는 훌륭한 분들도 있다. 

출처 : Pixabay

 마지막으로 공자께서 지혜로운 자는 즐겁게 살고, 어진 사람은 장수한다고 말한 것을 명심해야 한다.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배우고 지혜를 키우는 것은 즐거운 인생이다. 그러면서 사랑의 정신인 ‘인’을 베푸니 행복하고 오래 살 수밖에 없다. 물론 꼭 그런 법은 아니지만 그만큼 마음의 평화를 얻기 때문에 더 오래 살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다. 


 사실 베풀면 늘 본전 생각이 난다. 내가 이렇게 베풀었는데, 왜 받는 것은 없을까? 나는 베풀려고 했는데, 이용당하는 것일까? 그러한 생각이 반복되면 결국 마음의 문을 닫게 된다. 그래서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명하게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다. 내가 베풀 곳과 아닌 곳을 구분할 줄 안다. 또한 베푼다는 것이 결국 ‘나를 위한 것’ 임을 잘 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나누어줄 때, 행복 호르몬이 상승한다. 그것은 남들 앞에서 나의 부와 명예, 지위를 과시할 때보다 훨씬 더 큰 기쁨이다. 


 끊임없이 변하면서 배우는 ‘지혜’와 남을 인정하고 포용하고 사랑하는 마음인 ‘인’. 이 둘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다. 역시 바닷가에 인접한 산이 되는 것이 나아 보인다. 그러면 물의 변화와 산의 넓은 포용과 사랑을 모두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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