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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Dec 01. 2020

《백인의 취약성》: 백인이 이야기하는 불편한 인종주의

“이 나라는 처음부터 아메리카 토착민을 학살하고 그들의 땅을 강탈하려 했다.” - p15


 머리말부터 ‘백인’인 저자는 미국, 그것도 미국을 세운 백인에 대해서 도전적인 화두를 던진다. 


 “미국의 부는 납치해 노예로 만든 아프리카인과 그들 후손의 노동으로 쌓아 올린 것이었다.” - p15 


 이미 누구나 아는 ‘팩트’이지만 이를 백인인 저자를 통해서 다시 한번 확인한다. 사실 우리가 어릴 적에 본 서부 영화에 인디언들은 야만인, 백인들은 개척자로 나온다. 백인들이 인디언에게 행한 잔인한 행동은 잘 나오지 않고, 인디언들이 백인의 머리가죽을 벗기는 야만성을 보여준다. 백인 감독이 만든 영화니 당연한 것이다. 인디언 감독이 만든 인디언 영화가 있는가? 실제로 미국 흥행 영화의 감독 대부분은 백인이다. 


 토착민을 힘으로 밀어내고, 이어서 머나먼 아프리카 대륙에서 노예를 끌고 와서 세운 국가가 미국이다. 흑인뿐만 아니라 중국인, 일본인 등이 초기 미국에 와서 그들이 꺼리는 위험한 일을 많이 하면서 인프라를 구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은 백인이 주도하고 있다. 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인종차별을 행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불합리성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그녀는 다문화교육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년 넘게 사회 정의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백인의 취약성’이라는 개념을 만들어서 논문을 썼고, 이 책은 2018년 이후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 과잉진압 사망 이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그만큼 많은 미국인(백인, 유색인)들이 공감하는 내용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저자가 백인들을 대상으로 다양성 훈련사라는 직업을 시작했을 때, 많은 백인들은 ‘인종주의’에 대해서 처음부터 거부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소수민족 우대정책으로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다고 분개했다. 저자는 이들의 분노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려고 노력했다. 


 “우리가 유색인보다 더 많은 권리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에게 이로운 체제에 투자하는 우리의 모습도 보았다.” - p27 


 다수의 백인이 거주하는 미국 사회에서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식의 정치와 경제 정책을 펴게 된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을 직접 뽑는 것이 아니라 선거인단을 뽑는 것이 대통령 선거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 대통령 후보가 트럼프 대통령보다 더 많은 표를 획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인단 수에서 밀려서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심지어 흑인이 많은 지역에서는 선거 부스가 적어서 투표를 하려면 몇 시간을 기다려야 된다고 한다. 반면 백인 거주 지역은 몇 분 만에 투표가 끝난다. 이런 식으로 알게 모르게 ‘제도적으로’ 차별은 행해지고 있다. 


 저자는 인종주의에 대해서 설명할 때 많은 백인들이 이 문제를 개인화시키고, 인종주의를 부도덕함으로 연결시켜서 자신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서 백인 중에서도 이탈리안 계 백인은 자신의 부모 세대는 이미 인종차별을 겪었기 때문에 백인도 인종주의를 경험했다고 개인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또한 인종주의는 부도덕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하지만 백인 인종주의는 보다 큰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당신의 개인적 서사에 집착하지 말고 서로 공유하는 더 넓은 문화의 구성원으로서 우리 모두가 받는 집단적 메시지와 씨름해보라.” - p41
 
출처: Unsplash

 ‘백인’이라는 용어는 1600년대 말에 식민지법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1800년대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이민자들이 들어오면서 백인 인종 개념은 더욱 공고해졌다. ‘백인’으로 분류되기 위해서 법원에 소송을 걸기도 했다. 그만큼 백인으로 산다는 것은 차별을 경험하지 않고, 무엇보다 ‘우월의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가난한 노동 계급이라도, 만약 백인이라면 일말의 우월한 자긍심을 갖게 된다. 이는 저자도 인정한 부분이다. 

 “나는 내가 백인이라는 것과 백인인 편이 더 낫다는 것을 언제나 알고 있었다.” - p52


 백인 지배계급 입장에서도 빈곤한 백인을 복종시키기 위해서 이러한 백인 계급 만들기를 장려했다. 가난한 백인들은 그래도 자신이 백인이라는 것에 자긍심을 갖고, 유색인종들을 차별하면서 백인 지배계급에 덜 반항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백인의 인종주의는 꽤 근본적인 부분을 다룬다. 백인이 다른 유색인종을 차별했다고 해서 인종주의라는 것이 아니라 백인이 누리는 ‘특권’ 즉 ‘백인 특권’에 안주하는 것 자체가 인종주의라는 것이다. 이 말은 시사하는 점이 많다. 사실 백인들을 위해서 제정된 법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제도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미 많은 안전장치를 해둔 셈이다. 그러한 체제에서 백인의 권리라고 당연시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자신에게 편한 제도를 부인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어릴 적 교육, 미디어 등을 통해서 유색 인종의 위험성(폭력, 범죄, 시위 등)을 접한 백인들은 자신을 ‘표준’이라고 생각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문제가 있기 때문에 계도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초기 미국 사회에서는 유색 인종의 열등함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한 시도도 했다. 


 “인종주의는 역사적으로 누적되어온 인종차별이자, 제도적 권력과 권한을 계속해서 사용해 편견을 강화하고 차별 행위를 체계적으로 강요함으로써 광범한 결과를 가져오는 체제다.” - p56

 저자가 여러 차례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 내에서 백인의 인종주의는 교묘하게 자리 잡고 있다. 대놓고 유색인을 모욕하지 않더라도 은근히 무시하고, 선입견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서 흑인은 무지하고, 사는 지역은 위험하다는 점이다. 물론 그런 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고, 아닌 지역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백인이 만든 미디어를 통해서 그런 주입을 받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편견을 갖게 된다. 이러한 편견은 유색인종인 우리도 갖고 있다. 


 만약 수학에 능한 흑인을 만나면 우리는 어떠한 반응을 보일 것인가? ‘수학은 보통 인도인들이나 아시아인들이 잘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문제는 이러한 백인의 인종주의는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는 점이다. 심지어 인종주의와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밀레니얼 세대도 자신도 모르게 백인 인종주의를 행하고 있다. 사소하게는 흑인의 말투를 흉내 내고, 아시아인들의 외모를 비하하는 등이 그것이다. 스타벅스 카페에서 백인 종업원이 아시아인이 주문한 커피 잔에 찢어진 눈을 그려서 이슈가 된 적도 있다. 


 미디어를 비롯해서 많은 제도가 백인 위주로 되어 있다. 어릴 적부터 이러한 제도 속에 살다 보면 당연히 세뇌가 되고, 백인이라는 소속감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저자가 마지막에 밝힌 것처럼 이러한 백인의 자정 활동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하고, 연구도 필요하다. 또한 백인 사회에서는 저자의 연구에 대한 반발도 많이 있다. 앞으로 미국 사회에서 라틴계 비중이 증가한다고 하지만 과연 그것이 인종 간 갈등을 해소할지 의문시된다. 


 “인종주의를 저지하려면 용기와 지향성이 필요하다.” - p263
출처: Unsplash



 이 책을 읽으면서 교묘한 백인의 인종주의가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과연 우리는 어떤지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는 단일 민족, 우수한 민족의 자긍심을 어릴 적부터 교육받았다. 그랬기 때문에 다른 아시아의 민족들을 알게 모르게 무시한 것이 아니었을까? 특히 우리나라에서 궂은일을 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국민들에 대해서는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반면 백인들에 대해서는 대체로 호감을 갖고 있다. 이 또한 수많은 미디어의 영향 때문이다. 예전에 들은 일화가 있다. 어떤 학부모가 아시안 계 미국인보다 백인 미국인을 영어 선생으로 선호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진짜(?) 미국인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놀이동산을 가면 어떤가? 춤을 추고 아름답게 묘사되는 것은 백인 무용수들이다. 디즈니의 영화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의 부를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백인이 다수이기 때문에 이러한 트렌드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한 번 생각해봐야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백인의 취약성’뿐만 아니라 ‘우리의 취약성’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한 번쯤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미디어와 콘텐츠, 문화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 이번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으로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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