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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Jan 18. 2021

김형수 작가의《유행가들》

우리가 잘 모르는 대중가요 이야기

 저자는 1959년생이다. 격동의 70~80년대를 몸소 체험했다. 더군다나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에도 현장에 있었다. 이후 소설가로 등단하고, 각종 평론과 논설가로 활동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유행가’를 한국 대중가요의 시초부터 1990년 이후까지 다룬다. 물론 지금은 2021년이고, BTS, BLACKPINK 등 아이돌 그룹이 전 세계에서 널리 사랑을 받고 있다. 저자에게 있어서 유행가는 ‘사상과 시대적 정신을 담은’ 유행가다. 특히 책의 말미에 저자는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만큼 노래의 가사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언어를 함부로 쓰는 것은 주먹을 함부로 휘두르는 것보다 더 나쁘다.” - p222


 현재 대중가요의 뿌리를 찾아보기 위함이라면 이 책이 제격이다. 물론 BTS의 음악적 뿌리가 일제 강점기, 유신 체제, 독재 정권 등의 격변기 음악과 같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이 고민하는 사회적 차별과 갈등, 청소년들의 고민과 방황도 결국 현 시대적 배경과 큰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유행가였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사실은 저자의 배경이다. 저자의 고향은 전라도 함평 지방이고, 부모님이 시골 장터에서 ‘주막’을 했다. 당시에는 유랑 극단이 이 주막에 종종 머물렀다. 서커스단, 떠돌이 영화사, 약장사, 명창 고수 등이 늘 곁에 있었고, 저자는 이 때 당시의 유행가부터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우리의 대중유행 가요 역사는 이미 100년이 되었다. 음악 교육을 제대로 받고, 음악 활동을 시작하는 것은 채규엽 씨다. 그는 도쿄의 중앙음악학교 성악과를 졸업하고 1928년 서울에서 바리톤 독창회를 가졌다. 그야말로 공인된 대중가수 1호였다. 그가 주로 부르던 곡은 일본의 엔카풍 곡이었다고 한다. 


 1940년대 일본이 패전에 가까워질수록 연예인들도 각종 선전대에 차출되었다. 분단국가가 된 후에도 마찬가지다. 월북한 연예인들의 노래는 금지되었고, 남쪽에 남은 연예인들도 선전대 활동을 해야 했다. 


 “분단 체제는 가수들을 피난민으로 만들거나 죽게 하고 또 ‘정훈공작조’에 편성시켜 위문 활동이나 하게 만들었다.” - p90


 심지어 군가가 유행가가 되어서 아이들도 따라 부를 정도였다. 이렇게 전쟁의 아픔을 겪고 나서 새로운 유행가가 들어오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왜색 풍의 유행가였다면, 이제는 서양풍으로 유행가의 흐름이 바뀌게 되었다. 우리가 1960년대, 70년대 배경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접한 통기타, 장발, 음악 감상실 등이 대표적이다.


 군부 독재 체제에서는 많은 곡들이 금지곡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가수 이미자 씨의 ‘동백아가씨’는 ‘그리움에 지쳐서 꽃임이 빨갛게 멍이 들었다’는 대목인데, ‘빨갛다’는 것과 일본에서 조총련계 동포들에 의해서 합창된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박정희 정권과 대립했던 록 음악의 거장 신중현 씨도 많은 탄압을 받았다. 심지어 그가 키워낸 가수 김추자 씨가 간첩이라는 말도 안 되는 루머도 돌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녀의 ‘춤’ 때문이었다고 한다.


 “유난히 관능적인 동작으로 무대를 휘어잡았던 그녀의 몸짓이 당시 사람들에게는 다소 필요 이상의 동작으로 보였을 수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아무려면 그것이 북한에 보내는 암호의 몸짓이었을라구!” - p116 


이 외에도 조영남의 '불 꺼진 창'은 창에서 불이 꺼졌다는 이유로, 김추자의 '거지말이야'는 창법 저속과 불신감 조장이라는 항목이로, 한대수의 '물 좀 주소'는 물고문을 연상시킨다는 등의 다양한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다.


 저자가 말한 바와 같이 당시에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간첩’으로 몰렸고, 정권에 반항하는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보복을 당했다. ‘반공’을 이유로 자유로운 창작 활동이 억압당했던 시대다. 요새 청소년들은 이해할 수 없는 시대를 지금의 중, 장년 세대들은 몸소 겪고 체험했다. 예전에는 음반을 내면 꼭 마지막에 ‘건전가요’를 하나씩 넣어야 했고, 영화관에서는 영화 전에 대한뉴스를 꼭 시청해야 했다. 뉴스의 시작은 언제나 대통령의 활동에 대한 것이다. 


 1960년대는 전통 신민요, 트로트부터 시작했다. 이후 미8군에서 활동한 가수들이 팝, 락, 재즈 음악을 선보였고, 마침내 세시봉 음악 감상실에서 포크송이 꽃을 피웠다. 1970년대는 히피 문화와 더불어 한국에서는 포크송이 본격적으로 사랑을 받았다. 처음에는 외국 곡을 번안한 것 위주였으나 어느덧 시대적 정신을 반영한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다. 


 대표주자가 김민기 씨였고, 그의 음악을 꽃피운 것은 양희은 씨였다. 그 유명한 ‘아침이슬’이라는 곡이 버려질 뻔했지만, 찢어진 악보를 찾아서 부른 사람이 가수 양희은이었다. 그녀가 부른 김민기 씨의 ‘봉우리’는 정말 감동적이다. 나도 이 노래를 우연히 라디오에서 듣고 정말 큰 감동을 받았다. 지금 다시 들어도 너무 좋은 곡이다.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 p170


 이 책을 통해서 193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시초부터 60년대, 70년대 그리고 80, 90년대까지 큰 흐름을 짚어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저자의 삶 자체가 대중문화였다. 어릴 적 부모님이 주막을 하면서 수많은 유랑 악단의 음악을 접하고, 또한 그의 형이 ‘유행가’ 전도사가 되어서 그에게 대중음악의 ‘DNA’를 심어두었다. 


 이제 음악은 글로벌화가 되어서 한국에서 발표하는 곡이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알려지고, 수천 만, 수억 명의 청취자, 팬이 생겨난다. 일제 강점기, 독재 치하를 겪고 우리 민족의 삶은 ‘한’ 그 자체였다. 이제 그 한을 풀고, 우리의 자유로운 정신이 더 많은 세계의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 감동을 줬으면 한다.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유년 시절도 돌아봤다. 반공 캠페인, 새마을 운동, 운동장 조회, 학도호국단, 조용필, 아침이슬, 양희은, 소방차, 서태지와 아이들, BTS, Blankpink 등. 수많은 문화와 음악이 나의 곁을 스쳐지나갔고, 지금도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있다. 


 저자의 유려한 필체와 맛깔스러운 스토리가 상당한 흡입력을 발휘한다. 부모님께도 보여드리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193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다양한 곡들을 다시 한 번 들어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김민기씨, 양희은씨가 부른 ‘봉우리’는 꼭 한 번 들어보기를 추천드린다. 


 * 이번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으로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https://vibe.naver.com/track/432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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