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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Jan 27. 2021

《위험한 법철학》: 상식에 대항하는 사고 수업

 “법: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 규범. 철학: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 


 ‘법’이라는 것이 사회를 지탱하기 위한 강제 규범이라면, ‘철학’은 인간과 세계의 근본 원리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렇게 사회의 표면적인 것과 인간의 내면적인 것이 함께 어우러진 것이 ‘법철학’이다. 즉 인간이 만든 규범을 ‘상식적’인 측면에서 질문을 던지고, 여기에 대한 대답을 구하는 것이 바로 법철학이다. 


 뉴스를 보면 늘 법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법을 기본으로 판사가 판결을 내린다고 해도 법리를 누가 어떻게 해석하는 가에 따라서 결과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에는 감정이 있을까? ‘판사’나 ‘검사’에게도 감정이 있을까? 당연히 있으면 안 된다. 감정이 실린다면 판결이 더욱 제각각으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상참작 등과 같이 피고인이 깊게 죄를 뉘우치면 양형을 감해줄 수는 있다. 하지만 이것도 어느 정도 과거 판례를 참고할 것이다. 

출처: Unsplash

 “법률은 정의, 도덕(올바름)과는 원칙적으로 무관한 룰이다.” - p25 


 이와 같이 법률과 도덕은 무관하고, 하나의 ‘룰’로 자리 잡은 것을 ‘법실증주의’라고 한다. 저자가 예로든 바와 같이 이것은 마치 축구나 야구 게임처럼 게임의 룰인 셈이다. 누구나 지켜야 하는 것이 바로 법실증주의다. 만약 누군가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애초에 게임을 할 수 없다. 합의로 이루어진 법에 강제성을 부여한 이유가 바로 이와 같다. 


 반면 인간의 ‘본성’에 기반하고 실정법에 우월한 효력을 지닌 법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 ‘자연법론’이다. 이는 성문화 되어있지는 않지만 보통의 사람들이 느끼는 도덕적 판단을 기준에 둔다. 사실 수많은 재판 결과에 사람들이 분노하는 이유가 바로 ‘자연법론’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법’의 해석은 맞지만 인간의 본성, 도덕적 관념에는 배치되는 경우다. 


 예를 들어서 아동학대를 저지른 부모가 사람들이 예상한 것 대비 ‘선처’(?)를 받는다면 많은 이들은 재판장의 신상을 털고 공격하고 비난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 물론 항고 제도가 있어서 피해자가 1심에 불복해서 고등법원이나 대법원에 항고할 수도 있지만, 이 또한 ‘법실증주의’에 기반으로 판사가 판결할 것이다. 


 “아동학대를 한 부모는 괘씸하다. 천벌을 받아야 한다. 극형을 받아야 한다.”라는 감정적인 호소는 소용이 없다. 법은 철저하게 법리와 판례를 통해서 최적의 결정을 내리도록 설계되어있기 때문이다. 최적은 기본적으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를 기본으로 한다. 


 인간의 ‘본성’이라는 부분도 다소 애매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동학대를 경멸하고 싫어하지만, 또 누군가는 어느 정도 필요한 체벌이라고 여길 것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만 예전 로마 시대에는 집안의 가장이 자식을 체벌해서 죽음에 이르게 하더라도 형법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물론 도덕적으로는 비난을 받겠지만 말이다. 

출처: Pixabay

 과연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법’도 인정해야 하는가? 저자는 이에 대해서 소크라테스의 예를 들었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명언을 남긴 아테네의 철학자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독배’를 마셨다. 탈옥을 하라는 친구의 권유를 듣지 않고, 그는 악법이라도 존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를 통해서 첫째 법에 대한 존중, 둘째 악법은 고쳐져야 한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남겼다. 


 결국 법은 지켜야 하지만, 정말로 문제가 있는 법은 고쳐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메시지다. 무조건적으로 법을 따른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저자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예로 들었다. 나치 당원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대인들을 더 많이 구하기 위해서 개인적인 손실을 감수하고, 목숨의 위험도 무릅썼다. 또한 2차 세계대전 당시 리투아니아의 일본 대사관에서 유대인에게 비자를 발급하여 망명을 도운 일본 대사도 예를 들었다. 


 다만, 저자가 2차 세계 대전 당시 상부의 명령을 맹종한 나치를 비판하면서, 일본의 침략 전쟁을 지지한 정치인, 또는 이에 대항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다소 아쉬운 면이다. 


 저자는 ‘법철학’이 결국 겉으로 보이는 깨끗한 것을 걷어내고, 그 안에 ‘음지’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수많은 법규가 그렇다. 겉으로는 정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불리하거나 부당할 수도 있다. 지나치게 많은 법규(법화)도 문제고, 그것을 그냥 따르는 사람도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과연 이 ‘법’이 합당한 것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해야 한다. 즉, ‘인간’을 관점으로 봤을 때, 상식적으로 봤을 때, 이 법은 합리적인지 생각해야 한다. 저자가 강조했듯이 지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고, 문제가 있는 법은 고쳐야 한다. 


 이를 ‘연못 물 퍼내기’로 비유했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연못이지만 물을 퍼내다 보면 그 안에 쓰레기나 각종 오물 등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을 찾아서 제거하는 것이 바로 법률가들이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물은 다시 고일 것이고, 오물은 또 생긴다. 그래서 늘 고민하고 질문을 멈추면 안 된다. 


 “법철학은 골문이 없다. 늘 게으름 없이 물을 퍼내야 한다. 늘 ‘이래서 되는가?’하고 물어야 한다.” - p327

 인간은 불완전하다. ‘법’도 불완전한 인간이 만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저자는 다양한 사례로 이를 설명한다. 카지노는 합법인데 돈내기 마작은 왜 위법인가? 도수 1도 이상의 알코올을 개인이 제조하는 것은 왜 안 되는가? 동물에게 권리가 있을까? 자신의 의사로 매춘이나 장기를 파는 것은 안 되는가? 내 집 앞에 쓰레기를 마음대로 쌓아도 되는가? 


 ‘법’과 ‘철학’. ‘제도’와 ‘도덕’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저자는 어려운 법을 쉽고 유머러스하게 설명한다. 본인도 인정하다시피 술을 너무 좋아하는 다소 불량한 법철학자답게 법과 철학을 바라보는 시선이 신선하다. 


 * 이번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으로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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