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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Jan 27. 2021

<파우다> 혼돈

이스라엘 방위국 vs. 하마스의 테러 전쟁을 다룬 이스라엘 드라마

 <파우다>는 아랍어로 ‘혼돈’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이 드라마는 혼돈 그 자체이다. 여기저기서 총을 쏘고, 폭탄이 터진다. 언제, 어디서 테러가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황량한 사막 같은 곳에서 두 민족이 서로에 대한 증오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부르짖는다.


 이 드라마는 이스라엘 서부 지중해 연안에 있는 텔아비브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스라엘 방위국의 요원들과 팔레스타인 자치국, 하마스와의 대결과 갈등을 다룬다. 시즌 3까지 나왔고, 시즌 당 총 12편이다.


 도대체 무엇이 정의인지, 정의가 아닌지도 잘 모르겠다.


 이스라엘은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아랍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요원들을 팔레스타인 사회에 침투시켜서 테러범을 찾아내려고 한다.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습니다.”라는 말은 애초부터 없다. 누가 먼저 총을 뽑아서 쏘느냐가 중요하다. 안 그러면 내가 죽기 때문이다. 0.1초의 판단으로 이를 결정해야 한다.


 이스라엘 방위국은 ‘채찍’과 ‘당근’을 번갈아가면서 테러범과 가족, 친구 등을 회유하거나 협박한다. 반대로 팔레스타인 자치국에서는 이스라엘과 자국 내 극열 단체인 ‘하마스’ 사이를 중재하려고 노력한다. 하마스는 어떻게든 빼앗긴 나라를 찾으려고 과격 시위나 테러를 벌이려고 하고 있고, 하마스 내에서도 방법론에 대한 논쟁이 많다.


 더군다나 시리아에 기반을 둔 ISIS(이슬람 근본주의)는 더 과격하고, 이슬람 사회에서도 그 방법론에 대해서 비난을 받고 있다.

출처: Netflix 공식 홈페이지

 늘 궁금한 점이 있었다. 왜 그렇게 유대인과 아랍인은 서로 싫어할까? 서로를 그렇게 미워하는데 어떻게 한 지붕 안에서 살 수 있을까? 


 애초에 팔레스타인을 위임 통치하던 영국은 아랍 국가 건설을 약속했지만 결국 유대인이 이 땅을 차지했다. 1948년 유대인의 지도자 벤구리론이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한 것이다. 아랍은 이스라엘과 제1차 중동전쟁을 벌였고, 이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기존에 국제연합이 약속했던 땅 보다 더 많은 곳을 차지했다.


 기존에 생활 터전을 갖고 있던 아랍인들은 쫓겨나고 '팔레스타인 난민'이 되었다. 당연히 이스라엘을 원망하고, 이들을 쫓아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 2차 (1956년 10월), 제3차(1967년 6월) 중동 전쟁도 이스라엘이 승리하면서 팔레스타인의 입지는 좁아졌다. 지금은 팔레스타인 국가를 가자 지구와 웨스트뱅크에 세웠지만 여전히 불안한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출처: 구글 검색

 삶의 터전을 빼앗긴 팔레스타인들이 불쌍한 것이 사실이나 과격 단체, 특히 하마스나 ISIS의 테러 행위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불안감과 반감을 조성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영웅으로 보일 수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제 팔레스타인들은 ‘평화’를 원한다. 유대인을 이스라엘에서 몰아내기에는 이들의 산업 기반과 세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과 공생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과잉 진압보다는 대화를 통해서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 또한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이러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국의 배경 속에서 이 드라마는 이스라엘 방위군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스라엘 방위군에서 실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시나리오이기 때문에 사실감이 있고, 액션도 할리우드의 과장된 액션과는 다르다. 상당히 사실적이고, 때로는 너무 사실적이어서 테러의 무서움이 실감된다.


 또한 이 드라마는 어느 한 쪽이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이스라엘에서 제작했지만). 이스라엘 군과 하마스, ISIS의 잔임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각자 이념과 자신이 믿는 '정의'를 위해서 싸우고 있지만, 결국 남는 것은 상처뿐이다.


 주인공은 '도론'으로 이스라엘 방위군의 주요 요원이었다가 은퇴하고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와이프와 아이 둘과 오붓하게 잘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제거했다고 믿었던 하마스의 핵심 멤버가 살아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컴백하기로 한다. 이번 단 한 건만 처리하고,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지만, 그는 이미 폭력과 긴장에 길들여져 있었다. 가족과의 평화로운 생활보다는 같은 팀의 대원들과 유대가 더 중요했다.

출처: Netflix 공식 홈페이지


 드라마에는 긴장감이 계속 흐른다. 음악도 그렇고, 늘 어딘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사람들은 늘 무장하고 있고, 시장이나 레스토랑 등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서도 갑자기 로켓탄과 총알이 여기저기서 날아다닌다.


 그런데 이러한 것이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실제로 벌어졌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 더 무섭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문화다.


 이스라엘의 유대인 대원들은 담배와 커피를 입에 달고 살고, 장례식장에서는 술을 엄청나게 마신다. 물론 주량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말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담배와 커피를 늘 함께 하는 것 같다. 단, 종교적인 이유로 술은 마시지 않는다.


 이스라엘 방위국에는 여성 군인들이 많고, 포로를 심문할 때도 여자 군인이 나서는 경우도 많다. 상당히 터프하면서 외향적인 이미지를 많이 보여준다. 반면 아랍 여성들은 남편을 내조하고, 웬만해서는 나서지 않는다. 그러다가 자신의 남편이나 아들이 ‘순교’를 하면 영웅의 엄마나 아내의 역할을 해야 한다. 가슴이 찢어지듯이 아프면서도 겉으로는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도대체 '순교자'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수많은 젊은이들을 폭탄 테러, 자살 테러 등에 몰아넣었는가? 
출처: Netflix 공식 홈페이지

 넷플릭스를 통해서 이 드라마를 접하고, 처음에는 영어 더빙으로 듣다가 더빙이 조금 어색해서, 원어로 들었다. 히브리어, 아랍어인데 둘 다 비슷하게 들린다.


 더군다나 유대인과 아랍인도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 실제로 이스라엘 방위군의 유대인 대원들이 유창하게 아랍어를 하면, 팔레스타인들은 이들이 유대인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ISIS 요원들이 히브리어를 능숙하게 하면, 이스라엘인들도 착각하고는 한다. 


 그 동안 북미권 위주의 드라마를 시청했다면, 이스라엘 드라마는 신선하게 다가온다. 히브리어, 아랍어를 듣는 것도 새롭다. “슈크란”(Shukran)이 아랍어로 “고맙습니다”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슈크란(Shukran) = 고맙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현재 정치적, 사회적 상황, 또한 이들의 문화를 궁금해 하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드라마다.


 헐리우드 액션에 비하면 약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사실감을 더 많이 살린 액션이라서 무게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이 날아다니지도 않고, 적들이 무조건 총에 맞지도 않는다.


 참고로 트럼프 미국 전직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고, 미국 대사관을 세우면서 화약고에 불을 붙혔다.


 어서 갈등이 해결되어서 평화로운 시대가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면 이런 드라마는 더 이상 생기지 않을 것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2082159005&code=970209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326113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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