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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May 01. 2019

40km,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해야 하는 나이

40대가 두려운 분들께 드리는 글

“나는 지난 49년 동안 곧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살아왔다. 죽음이 두렵지는 않지만 빨리 죽고 싶지도 않다.  나는 해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 스티븐 호킹, 영국 매체 가디언과 인터뷰 중


이렇게 우리의 인생은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지만 역시 죽음은 두렵다.


지인에게서 문자가 왔다.

어떤 문자인지 열어보니 웹사이트와 링크 되어 있었는데 오랜만에 보는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그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펀드 회사에서 펀드매니저 겸 애널리스트를 하는 분이다.

그런데 그가 암으로 휴직 후 투병 중이라는 얘기만 들어서 문득 부고가 아닌가라고 생각되었다.

역시나 부고였다.

순간 가슴이 쓰렸다.

그 부고에는 그의 평생 업적, 가치관, 친구, 가족들, 병마와 싸워온 가슴 아픈 얘기가 상세히 적혀있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2006년 1월 라스베가스의 한 미팅 룸이다.

미팅 룸을 들어가서 만나보니 나를 무슨 범죄자처럼 취조하는 것 같았다.

나는 IR팀 (Investor Relationship)에 있어서 투자자들에게 회사에 대한 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심성 관리도 해야 되지만 조금 정도가 심한 거 같았다.

인종 차별은 아니지만 속으로 ‘전형적인 잘난 백인 녀석’이라고 욕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우리 회사의 3대 주주 안에 드는 회사의 펀드 매니저 겸 애널리스트라고 했다.


내가 괜히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았나 걱정도 들었다.

그리고 5년 동안 그를 지겹게 만났는데 그는 유머도 곧잘 하고 업무상 어쩔 수 없이 까칠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소문으로는 한해 보너스로 40억 원을 받고 집에 테니스 코트도 있어서 선생님이 테니스를 가르치러 온다고 했다.


그런 그가 2-3년간 병마와 싸우다 떠났다.

역시 똑똑한 사람답게 그는 모든 실험적인 의학 요법을 다 사용한 거 같다.


그를 보면 스티브 잡스가 생각난다.

그는 업무에 대한 열정도 대단했지만 굉장히 가정적이었다고 한다.

돈도 많고 똑똑하고 지적이고 누구보다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불꽃같이 살다 떠났지만 인생에서 행복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떠난 후 그의 남겨진 저택과 테니스코트 그리고 가족들이 생각날 뿐이다.

비록 아버지가 막대한 유산을 남겼지만 아빠 없는 아이들은 어떤 마음일까?

아이들의 졸업식이나 결혼식 등에 아빠의 부재는 어떻게 다가올까?


문득 50대 부자의 죽음을 보면서 그의 40대는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50대에 자신이 곧 죽을 시한부 인생이었다고 알았다면 그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라고 생각한다.

왠지 인생을 즐기고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라는 상상도 해본다.


요새 예능의 대세는 슬로 라이프와 공감, 소통이다.

효리네 민박집, 윤 식당, 삼시 세끼라는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이 예능 프로그램들을 보면 알겠지만 로봇이 인간을 대체한다는 4차 혁명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다.

삼시 세끼는 그냥 시골집 빌려서 밭일하고 밥해 먹는 얘기고, 효리네 민박도 제주도의 효리네 집에서 같이 밥해 먹고 음악 듣고 얘기하는 것이다. 윤 식당은 또 어떤가? 해외에서 한국 요리를 낯선 외국인들에게 대접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연예인들의 모습이다. 전혀 돈벌이와 상과 없다. 이들은 자신의 힘으로 음식을 하고 같이 공감, 소통을 하면서 힐링을 느끼는 것이다.


한마디로 느림과 여유의 미학이다.


40대가 되면 느림의 미학을 배울 때다.

이제는 업무의 업 앤 다운의 사이클도 알고, 중요한 것, 안 중요한 것도 구분할 수 있다.

업무에 강약을 조절하고, 내가 하는 일도 잠시 멈춰 서 왜 하는지 돌아봐야 한다.

이렇게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고 배울 때 남들과 대화를 할 때도 좀 더 느긋하게 들어줄 수 있고 나만의 ‘품격’을 완성하게 된다.


그렇다고 무조건 천천히 하라는 것이 아니고 ‘강약 조절하기’, ‘우선순위 정하기’가 중요하다.


우리의 인생은 재즈와 같다. 

처음에는 재즈의 비밥이나 라틴(빠른 재즈 연주 곡)처럼 20대를 보냈다면, 30대는 스윙(미드 템포의 곡)과 같고, 40대 이후는 발라드와 같다.


재즈에서 발라드는 굉장히 무거우면서 중후한 느낌을 준다.

이렇게 발라드로 오기까지 우리는 수없이 많은 자유와 방황이라는 즉흥연주를 해왔다.

그러면서, 절제의 미를 배우고 또한 공감 능력을 배우게 된다.


나이 40이 넘으면 인생의 중후함을 배우게 된다.

물론 20,30대 때도 ‘발라드’를 연주한다. 하지만 자유와 절제, 공감을 배운 40대 이후의 연주는 확실히 다르게 느껴진다. 나도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고 회사나 사회생활에서 인생의 단맛, 쓴맛을 보고 나서 다시 발라드를 연주해보니 피아노 노트, 노트마다 느낌이 다르게 다가온다.  


인생과 닮은 마라톤인 42.195km를 다 뛰었다고 끝은 아니다.

즉, 40대가 끝은 아니라는 얘기다. 다들 조기 퇴직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끼고 50대에는 무엇을 할지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40대는 다음 마라톤 경기를 준비할 나이다.

50대 이후의 인생은 굳이 40km를 뛰지 않아도 된다.

10km 또는 5km만 걸어도 된다.

이제는 경기가 아니다.

50대부터는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의 여유를 즐기면서 남은 인생을 준비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40대부터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하고 50대 이후를 준비해야 된다.


이제 후반전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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