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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Mar 10. 2023

나이로비 : 초겨울 날씨와 혼잡한 도심

칠십에 떠난 아프리카 배낭 여행기

이 이야기(2013년 배경)는 저희 아버지인 조승옥 님이 쓰신 글을 제 브런치에 올린 것이니, 미리 양해 부탁 드립니다. 앞으로 10회 정도 연재 계획입니다. 아프리카 배낭 여행 계획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2013년 7월 22일 21시 20분 나이로비 행 대한항공 KE959편이 인천공항을 출발했다. 대한항공의 나이로비 직항노선은 2012년 6월 21일 첫 취항했다니 만 1년이 되었다. 이로써 아프리카의 하늘길이 열린 것이다. 인천공항에서 나이로비까지 비행시간을 보면 가는데 13시간 40분, 오는데 12시간 20분으로 왕복 26시간이 걸린다. 


인천공항에서 미국 LA까지 비행시간은 가는데 11시간 10분, 오는데 13시간 40분으로 왕복 24시간 50분이 걸리고, 뉴욕까지는 가는데 14시간 10분, 오는데 14시간 20분으로 왕복 28시간 30분이 걸린다. 그러니까 인천에서 나이로비까지 비행시간은 LA 보다는 편도 30분 정도 더 걸리고 뉴욕보다는 1시간 정도 덜 걸린다. 


인천↔나이로비         인천↔로스엔젤리스           인천↔뉴욕 

  13:40 +12:20           11:10 +13:40            14:10 + 14:20

   왕복 26시간          왕복 24시간 50분          왕복 28시간 30분

  

대형 에어버스 항공기인데도 빈 좌석이 없을 정도로 탑승객이 많았다. 아프리카로 가는 비행기 편이니 자연 아프리카 사람들이 많이 탔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막상 아프리카 사람은 얼마 없고 대부분 한국 사람들이었다. 한국 승객들의 80%는 관광객인 것 같고, 나머지는 자원봉사자나 사업관계로 가는 사람들로 보였다. 


식사 후에는 출국 전에 기내에서 읽을거리로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구입한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과 <무기여 잘 있거라> 가운데 <무기여 잘 있거라>를 읽기도 하고, 기내 영화를 보기도 하고, 음악을 듣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사실 나는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을 통해서 킬리만자로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책을 읽은 기억이 없다. 그래서 이번 여행 때 읽을 작정으로 그 책을 샀는데 집에서 이미 한 번 읽었다.  


<7월 23일 화요일>  

중간에 잠깐 눈을 붙였을 뿐 거의 뜬 눈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대략 도착 예정시간인 23일 05시(현지시간)에 케냐의 나이로비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동아프리카에 위치한 케냐는 북쪽으로는 에티오피아, 동쪽으로는 해적과 내전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소말리아, 남서쪽으로 수단, 남쪽으로 탄자니아, 서쪽으로 우간다와 접경을 이루고 있다. 면적은 한반도의 2.6배가 되는 58만 2천 646 평방미터, 인구는 4천 400만 정도. 


케냐는 적도에 인접한 나라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기온의 변화가 심하지 않다.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높은 케냐 산 주변 지역과 같은 고지대는 건기에 더욱 춥다. 인도양에 면한 해안지역은 연평균 21C~32C로 습하며, 북쪽과 북동쪽의 낮은 구릉지대는 19C~37C로 건조하다. 


나이로비와 온화한 고원지대는 13C~25C . 가장 더운 시기는 1월부터 3월까지, 가장 추운 시기는 7월, 8월이다. 그래서 7, 8월은 케냐 여행이나 킬리만자로 트레킹 성수기라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이 기간은 방학 기간이라 여행객이 몰리는 시즌이라고 하겠다. 나는 우연히 이런 계절에 아프리카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케냐는 공용어인 영어와 민족어인 스와힐리어를 사용한다. 도시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들은 영어를 사용하지만 도시와 지방에서는 대다수가 스와힐리어를 사용한다. 종교는 기독교, 이슬람, 힌두교, 다양한 토속신앙 등이 있다. 


전체 인구의 70 퍼센트 이상이 종사하는 농업은 국내 총 생산(GDP)의 약 30%를 차지하며, 관광은 농업 다음으로 중요한 외화 수입원이다. 석유를 비롯한  광물자원 등이 풍부한 북부아프리카나 서부아프리카 일부 국가들과 달리 대부분이 척박한 사바나 평야로 이루어진데다 특별한 자연자원도 없는 케냐 등 동아프리카 국가들은 북한보다도 못 사는 세계 최빈국에 속한다. 소말리아는 세계 200여 국가 중에 가장 가난한 나라로 2012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이 184달러다. 케냐의 1인당 국민소득은 820달러. 이에 비하면 1,074달러인 북한은 잘 사는 편이다.   



1400년 초 케냐에 도착한 최초의 외국인은 중국인으로 해안도시 라무(Lamu)에 정착하였다. 1498년 몸바사에 포르투갈 사람들이 정착하여 지저스 요새(Fort Jesus)를 건설하였다. 1895년 영국은 동아프리카 보호령을 발표하고 비옥한 토지를 빼앗아 유럽인들이 고지대에 정착하게 하였다. 1920년 케냐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러나 케냐 국민들은 1944년부터 정치 참여가 허용되었고 1952년부터 1959년까지 영국의 식민지법에 저항하여 봉기한 마우 마우(The Mau Mau) 운동으로 국가는 비상사태를 맞이하였다. 이것은 케냐의 정치과정에 아프리카 국민들의 정치 참여를 증대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1963년 6월 자치법을 획득한 후 그 해 12월 12일 케냐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케냐의 초대 대통령은 음제 조모 케냐타(Mzee Jomo Kenyatta)로 1978년 8월 22일 사망할 때까지 15년간 대통령으로 재직하였다. 그 후 당시 부통령이였던 다니엘 아랍 모이(Daniel arap Moi)에게 헌법에 따라 대통령직이 승계되었다. 모이는 2002년 민선 대통령이 선출되어 정권을 이양할 때까지 24년간 케냐를 통치하였다. 


케냐의 수도이자 케냐 최대의 도시인 나이로비는 적도에서 남쪽으로 14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나 1661미터의 높은 고도에 위치해 있어 연중 평균 기온이 섭씨 15도에서 20도 정도여서 아프리카의 전형적인 열대성 기후를 느끼지 못한다.  그곳 사람들은 나이로비를 "태양이 빛나는 녹색 도시"라 부른다. 그만큼 살기에 쾌적한 곳이라는 뜻이다. 


케냐는 사파리 여행의 중심지 또는 출발지로, 비즈니스와 문화의 메카이기도 하며 유엔을 비롯한 각종 국제기구와 국제적 기업의 중심 도시이기도 하다. 현대적인 시스템을 갖춘 인프라가 비교적 잘 발달되어 있어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나이로비 국제공항은 아프리카 여러 도시는 물론 세계 여러 도시와 연결되는 항공노선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나이로비를 "아프리카의 관문"이라고도 부른다. 인구는 대략 3백 50만에서 400만 정도 된다고 현지인들은 말한다.


나이로비는 철도망과 도로망이 잘 갖추어져 있는 도시이다. 간선(幹線)은 몸바사와 탄자니아로 가는 남동쪽과 남쪽, 그리고 고지대를 거쳐 빅토리아 호와 우간다로 가는 북서쪽으로 나 있다. 버스는 주요 대중교통 수단이로 나이로비 시내뿐만 아니라 케냐의 여러 지방과 인접 국가들까지 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나이로비에는 두 개의 공항이 있는데, 하나는 조모 케냐타 국제공항이고, 다른 하나는 주로 국내선으로 이용하는 윌슨 공항이 있다. 


1년 전인 2012년 6월 대한항공이 나이로비에 동북아시아 최초로 주 3회(월, 수, 금) 직항 편을 운항하면서부터 나이로비가 우리에게 더 가까워진지도 모른다. 길이 열려야 쉽게 갈 수 있고, 쉽게 갈 수 있어야 가깝게 느껴지고 자주 가게 되는 것이 사람의 심리가 아닌가? 


이제 내가 몇 달 동안 갈망했던 아프리카, 그리고 아프리카의 케냐,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아 나와 민박집에서 픽업해주기로 약속한 승용차를 타기 위해 피켓 판을 보았는데 내 이름이나 민박집 이름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한쪽 줄로 가서 보니 내 이름이 적힌 피켓이 보였다. 피켓을 들고 있던 사람은 민박집에서 부탁한 택시 기사였다. 


택시를 타려고 청사 밖으로 나오니 기온이 쌀쌀하게 느껴졌다. 택시기사는 겨울용 점퍼를 입고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서울에서 입은 반팔 티셔츠 차림이었다. 택시에 승차한 후 배낭에서 방한 외피 상의를 꺼내 입었다. 택시에 탄 시간은 대략 아침 6시 정도. 한국 시간으로는 23일 낮 12시다. 한국과 케냐의 시차는 6시간. 

 



우선 누구보다 나의 아프리카 여행을 궁금하게 생각하는 식구들에게 무사 도착을 알리기 위해 서울 집에 전화부터 했다. 현지시간 08시. 그리고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한 후 나의 여행 일정을 민박집 주인과 다시 점검하고, 사파리와 킬리만자로 트레킹 경비와 민박집 숙박료와 공항 택시비 등 모두 2,000달러를 지불했다. 이렇게 하니 현금 휴대에 대한 위험 부담이 줄어든 느낌이 들었다. 나머지 1,000달러를 가지고 다니면서 여행경비로 사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짐을 풀고 나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었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오전을 침대에서 보내고 점심 식사를 했다. 민박집 주인은 출타하고 가정부가 점심을 차려주었다. 실내 기온이 쌀쌀해 파카 내피를 입었다. 나이로비 체류 동안 잠을 잘 때도 파카 내피를 입고 잤다. 


나이로비는 겨울철 가운데서도 가장 춥다는 7월인지라 아침 기온이 12, 3도로 우리나라로 치면 아직 난방하기에는 이른 11월 중순 날씨로 보면 될 것 같다. 


5층 베란다에서 내다보니 주위는 키 큰 나무숲으로 덮여 있는 주택단지로 둘러 쌓여있고, 바로 앞에는 잔디운동장을 갖춘 초등학교가 눈에 띄었다. 이곳의 주택단지는 수 세대에서 수 십 세대에 이르는 우리나라로 치면 5층 내외의 빌라 형 집단주택이나 혹은 단독 건물들로 이루어졌으며, 이들 주택단지를 단위로 경비 체계를 갖추고 있는데, 입구에는 보통 큰 철문을 설치해 항상 닫아놓고 경비원을 24시간 배치시켜 놓고 있다. 


나중에 민박집 주인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이곳도 교육열이 상당한데, 내가 머문 민박집 주변은 유명한 학교가 많아 서울로 치면 8학군에 속한다고 한다. 




해질 무렵 민박집에서 5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슈퍼마켓에 갔다. 나는 사파리 갈 때 필요한 물과 캔 맥주 그리고 떠날 때 현지에서 사기로 한 라이터와 일회용 면도기를 사기 위해, 민박집 주인은 쇼핑도 하고 초등학생 딸아이와 그 친구 2명에게 피자를 사주기 위해. 


나는 우선 나이로비에서 쓸 현지 화폐를 민박집 주인으로부터 100달러에 8,000실링을 받고 환전했다.  슈퍼에 가니 정문 안쪽에 엘지 대리점이 있고 우측에는 삼성대리점이 있었다. 우리나라 슈퍼마켓이나 다름없이 다양한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그리고 고객 가운데는 백인들도 보였고, 중국인들이 비교적 많이 보였다. 어떻게 해서 중국인들이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다만 중국이 아프리카에 상당한 원조와  투자를 해왔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숙소에 돌이와 저녁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렇게 해서 나이로비에서의 첫날을 보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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