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생명이 너무 허무하게 사라지는 요새 세상을 보면서, 관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하루키 작가는 이를 '접촉'이라고 했는데요. 공평하고 성실하게 관계 형성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노력 없이 단지 그 사람이 나중에 사라졌을 때 안타까워하고 애도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회한이 남지 않도록 사람과 접촉해야 해. 공평하게, 되도록이면 성실하게. 그런 노력은 하지 않고, 사람이 죽으면 간단히 울면서 후회하곤 하는 인간을 나는 좋아하지 않아. 개인적으로. - 《댄스 댄스 댄스》 중에서
먼 관계보다는 가족과 친구, 사회적 관계를 생각해 보면 됩니다. 시간이 없더라도 마음속으로 그 사람에 대해서 한 번쯤 더 생각하고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했는지. 아니면 단지겉으로만 이루어지는 관계인지에 대해서 고려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차라리 그런 관계라면 애초에 '접촉'을 하지 않고, 관계를 이루지 않는 것이 낫겠죠.
부모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핏줄로만 연결되었다고 가족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이 필요합니다. 서로 간에 갈등도 있겠지만 나중에 후회가 없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쉽지는 않습니다. 가장 친하다는 이유로 오히려 부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키 작가가 주인공을 통해서 이야기한 '공평하게' 이루는 관계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록 가족이라도 무조건 기대고 바라는 것보다는 때로는 타인과 마찬가지로 선을 지키는 것이죠. 그것이 서로 간에 부담을 덜 주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런 생각이 야박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지나친 기대로 이루어진 관계는 오히려 상호 간에 에너지를 빨리 소진해서 나중에 희미한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형제나 친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누군가와의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합니다.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키 작가의 작품에는 주인공의 고독을 많이 엿보게 되지만 막상 자신이 맺는 관계에 대해서는 최대한 성실한 모습을 보이는 면도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숲》에서도 미도리라는 여자 친구의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있자 나름대로 신경을 써서 병시중을 합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는 쥐라는 친구와, 《댄스 댄스 댄스》에서는 유키라는 13살 소녀와 마음을 터놓고 친하게 지냅니다.
주인공의 친구들 중에는 돈 많고 권력에 취한 자들, 위선적인 사람들보다는 연약하면서, 솔직하고, 자아를 찾기 위해서 방황을 하는 이들이 많기는 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솔직한 인간들의 자화상이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주인공과 마찬가지인 셈이죠.
하루키 소설에는 고독한 자아가 드리워져있는데, 그렇다고 오직 혼자만 그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에는 함께하는 다른 자아들도 존재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이제껏 그리고 앞으로도 어떤 관계를 형성하면서 살면 좋을지 잔잔한 울림을 주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공평하고 성실하게 노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