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을 엎어라》

드라마틱한 역전의 승부사 이세돌의 반상 이야기

by 나단 Nathan 조형권

이세돌은 바둑의 승부사다. 역시 승부사답게 그는 구글의 알파고와 맞붙었다. 인간 중에서 최초로 인공지능과 바둑 승부를 벌였다. 4승 1패로 알파고가 승리했지만,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승리를 거뒀다. 그것이 프로그램의 오류이든 실수이든 인류의 자존심을 지켰다.


이 책은 2012년에 출간되었다. 그가 2016년 알파고와 승부를 벌이기 전이다. 이 책을 썼을 때도 이미 18년간의 바둑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 후 6년간 프로 생활을 더하고 2019년에 은퇴했다. 심지어 은퇴 시합도 NHN의 바둑 기사 AI인 ‘한돌’과 붙었다. 역시 이세돌답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늘 궁금함을 더 한다. 어떻게 그 자리에 올랐을까? 운과 실력, 그중에 무엇이 더 중요했을까? 난관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이를 헤쳐 나갔을까?


지금 여러 가지로 어려운 면에 봉착한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도 마찬가지다. 그의 과감한 투자 전략은 많은 이슈를 불러일으켰지만 결국 승리로 이끌었다. 금번의 위워크 투자 실패를 어떻게 해결할지도 관심이 간다. 하지만 그는 실패를 극복한 경험이 있다. 한참 경영활동을 해야 할 때 중증 만성간염으로 3년간 병원에 입원했는데, 이때 무려 4천 권의 책을 읽으면서 문제를 타개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도 못 할 강한 정신력이다.


이세돌 바둑기사는 어떠한가?


그가 열두 살의 나이에 프로기사가 된 후 5년 정도 바둑 실력이 답보상태에 있었다. 주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괄목할만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냥 조용히 잊힐 천재 소년 기사가 될 수 있었다. 다행히 18세 이후 성적을 내면서 스무 살에 당시 거목 같은 존재였던 이창호 9단에 승리를 거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바둑과 나 자신에 대해서 예전보다 진지한 성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눈앞의 대국을 승리로 이끄는 데에만 집중하고, 보다 크고 확실한 목표를 세워 매진하지 못했다.(중략) 마인드 컨트롤의 중요성도 자각하게 되었다.”


역설적으로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그는 성장하고 진정한 승부사가 되었다. 하지만 정상에 오른 후 그는 급격히 무너졌다. 자신감이 오히려 독이 되어서 자신의 바둑을 둘 수 없었다. 다행히 그를 두 번째로 일으켜 세운 것은 새로운 환경이었다. 중국 리그 참가와 도요타-덴소배 우승을 하면서 다시 실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후 다음 고비는 한국 기원과의 갈등이었다. 그가 참가하고 싶지 않은 대회에 한국 기원이 무리하게 출정시키면서 생긴 문제였다. 이후 26세에 휴직을 선택하고 생각의 기간을 갖는다. 그는 이때 자신의 바둑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곧 복귀한다. 12세의 어린 나이에 바둑만 바라보고 살았기 때문에 필요한 멈춤이었다.


“돌이켜보면 지난날들을 찬찬히 되짚어 보고 바둑과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분명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시합에 복귀하고 나서 우승을 차지하고,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다가 그는 2016년, 33세의 나이에 알파고와의 대전에 참가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바둑뿐만 아니라 전 세계 바둑의 운명이 걸린 시합이었다. 그는 이 시합에서 1승 4패를 했지만, 1승을 거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를 받았다.


무엇보다 그의 끊임없는 도전의식에 주목해야 한다. 이미 여러 번 왕좌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자신의 평판과 브랜드를 생각한다면 도전하지 않았을 시합이지만 그는 거리낌 없이 승부에 응했다. 한마디로 ‘판을 엎은 것’이다.


그는 2019년, 36세의 나이로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의 계기는 무엇보다 ‘알파고’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많은 팬들이 아쉬워했고, 다른 곳에서도 그를 부르는 사람이 많다. 미국에서 그를 대상으로 드라마나 영화를 만든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만약 그가 바둑계에서 상금이나 1위 자리를 위해서 계속 바둑을 했다면 바둑계의 거목이 되고 역사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도전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전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역사에 남는 사람이 되었다. ‘아름다운 도전’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그였다.


인간은 AI에 패배했지만 여전히 노력할 것이다. 그가 말한 것처럼 AI의 기보를 분석해서 거기에 대한 공략 방법을 찾을 것이다. 물론 점점 더 완벽해지는 프로그램 때문에 그 벽은 아주 높아 보인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습성 아닌가?


그가 이 책에서 주장한 것처럼 바둑의 결과보다는 그 내용이 더 중요하다. 물론 승리를 해야겠지만 오직 승리에만 목을 내면 안 된다는 것이다. “프로바둑기사는 기보로 말한다”는 말이 있듯이 그도 자신만의 기보를 남기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결국 더 어리고 젊은 바둑 기사들의 체력과 집중력을 따라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가 말한 것처럼 나이가 들수록 하강곡선이 완만해지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은 감퇴하고, 체력은 예전 같지 않지만 나 자신을 믿고 꾸준히 노력하고 나의 흔적을 세상에 남겨야 한다.


프로바둑기사에게 바둑 한 판은 마치 장인이 빚어내는 도자기 한 점과 같다.”


그가 강조한 바와 같이 어떤 일을 하던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장인 정신을 갖고 노력하다 보면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 돈과 지위만을 바라본다면 바라볼 수 없는 세계다. 그 점을 이세돌 바둑기사가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다. 나만의 ‘도’를 완성하는 것.


앞으로 이세돌 기사의 인생 2막이 기대된다. 아마도 그는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 것이다. 그것이 그의 승부사 기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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