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네… 그러니까…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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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1. 그러네, 그땐 그랬지


“따르릉.” 한창 TV 화면 너머에서 키득거리는 방청객의 목소리에 전염이 된 듯 나도 따라 웃고 있었는데 전화벨 소리 때문에 그 유쾌함의 맥이 순식간에 끊어졌다. 우리 집에는 TV가 거실에 자리하고 있어서 안방까지 건너가기가 쉽지 않았다. 웃음 리듬이 깨질 것만 같았다. “따르릉.” 또 울린다. 어찌나 소리는 우렁차기만 한지. 온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에 전화 온 것을 다 알 것만 같다.


주섬주섬 거실 바닥에서 일어나고 있었지만, 시선은 여전히 TV 화면에 고정되어 있다. 고개가 돌아가는 중에도 시선은 그대로였다. 방문을 넘지 못하고 TV를 곁눈질로 겨우 보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얼른 전화기로 달려간다. 방 문턱에 왼발이 걸려서 넘어질 뻔했지만 전화부터 받아야 한다. “따르릉.” ‘도대체 몇 번이나 울리는 거야. 시끄러워 죽겠네.’


“여보세요. 누구니. 아들이니. 엄마 곧 도착하니까. 대문 벨 누르면 짐 좀 받아줘. 알겠지?”

“네. (키득키득)”

“엄마 말 듣고 있니? 뭐 하는데 실실 웃고 그러는 거야?”

“네, 알았어요.”




#2. 그러니까, 빨리 좀 받으란 말이야


“드르륵.” 외근 중에 전화가 울리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바지 주머니에 넣었던가? 가방 안에 넣었던가? 오늘은 백팩을 메고 왔으니 가방 벗으려면 더 귀찮은데, 어휴 도대체 어디에 넣어둔 거야? 이런, 재킷 안주머니에 넣어뒀었다. 어찌나 드르륵거리는지 온몸으로 진동이 느껴질 텐데도 도무지 어디서 시작되는 진동인지 영 감을 잡지 못하는 걸 보니 역시나 지금은 외근 중이라는 사실이 더욱 또렷하게 다가왔다.


반으로 접혀 있는 휴대폰 화면을 열고서 통화 버튼을 누르기까지 떨어뜨릴 뻔한 순간이 있었다. 한 손에는 서류꾸러미가 들려 있어서 다른 한 손으로 힘겹게 열려고 하는데 어찌나 뻑뻑하기만 한지. 자물쇠를 걸어 잠근 것만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휴대폰이 손에서 미끄러져 하늘로 날았다가 바닥에 ‘쿵’ 하고 떨어지지 않은 것이다.


최 과장의 목소리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을 만큼 크다. 한 손으로 살짝 가려야 하는데 손에 뭔가를 들고 있으니 이거 참 난감하다. 다행히 전화는 길지 않았다. 잠시 후 또 전화가 울린다. “드르륵.” 이번에는 거래처 담당자다. “언제 오시나요? 시간이 거의 다 된 거 같아서요.” 휴대폰 화면을 보니 약속시간이 다 되어간다는 것을 겨우 깨달았다.

“5분 후 도착입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금방입니다.” 숨을 헐떡거리며 급하게 달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지 전화는 금방 끊어졌다.

또 전화가 진동소리를 뿜어낸다.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노이로제 걸릴 것만 같다.




#3. 그런데…


간만에 친구들끼리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 스마트폰이 “띠링” 하고 울린다. 화면을 열어보니 ‘나 5분 늦을 거 같어. 미안, 먼저 차 마시고 있어.’ 잠시 후 또 울린다. “띠링.” ‘차가 생각보다 막히네. 10분만….’


먼저 도착한 사람은 두 명이다. 도착했는데 둘은 처음에 “어, 왔어?”를 말한 이후 계속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다. 대화가 없다. 단체 메시지방에 문자만 주고받고 있다. 바로 앞에 앉아 있는데 대화는 스마트폰으로 하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 대화가 없다. 그런데 음료는 언제 주문하려나. 둘 중 누구도 먼저 선뜻 묻지 않는다. 스마트폰에만 고개를 숙인 뒤 그 화면만 바라본다. 나머지 둘은 곧 도착한다고 했는데 넷이서 계속 대화는 주고받고 있다.




전화는 진화하고 있는 것일까, 퇴화하고 있는 것일까? 말하는 것이 굳이 의미가 없어지는 것일까? 하지 않다 보면 하는 게 두려워져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그나마 나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려고 스마트폰을 사용하는데, 언젠가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것일까?


사람들은 늘 외롭다고 하는데 늘 외롭게 살 수밖에 없는 것만 같다. 혼자가 편한데 혼자 있는 것은 싫다고 한다. 이제는 전 세계를 뒤덮은 바이러스로 인해 더욱 더 반강제적인 외로움 속에서 살아야만 할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바쁘고 정신없는 도시 중 하나인 뉴욕. 세계 최고의 메트로폴리탄 시티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져 있는 뉴요커들. 하지만 1년에 단 한 번도 자신에게 전화가 오지 않는다고 말한 사람이 1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더 많이 대화하기 위해 태어난 전화는 더 적게 말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세상은 아이러니의 연속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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