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이 되어버린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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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모든 언행을 칭찬하는 자보다 결점을 친절하게 말해주는 친구를 가까이하라(Think not those faithful who praise all your words and actions; but those who kindly reprove your faults). - 소크라테스(Socrates)


우정이라는 기계에 잘 정제된 예의라는 기름을 바르는 것은 현명하다(It is wise to apply the oil of refined politeness to the mechanisms of friendship). - 콜레트(Colette)


친구를 고르는 데는 천천히, 친구를 바꾸는 데는 더 천천히(Be slow in choosing a friend, slower in changing). -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산, 강, 그리고 도시만을 생각한다면 세상은 공허한 곳이지만, 비록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우리와 같이 생각하고 느끼는 그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 지구는 사람이 사는 정원이 될 것이다(The world is so empty if one thinks only of mountains, rivers and cities, but to know that there is someone who, though distant, thinks and feels with us -- this makes the earth for us an inhabited garden). -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우정은 실연의 상처를 치유하는 최고의 치료제다(Friendship is certainly the finest balm for the pangs of disappointed love). - 제인 오스틴(Jane Austen)


더 쓰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역사상 수많은 철학자, 시인, 작가들은 사랑 못지않게 우정을 찬양하고 그에 대한 다양한 글을 남겼다. 정치가들뿐 아니라 대중들도 우정의 소중함을 결코 잊지 않았다. 오죽 했으면 ‘친구는 제2의 자신이다’라는 말까지 있을까.


하지만 친구 또한 한 편으로 생각해보면 남이다. 친구에게 배신을 당해 아파하고, 슬퍼했으며, 죽음에까지 이른 역사 속 인물들도 숱하게 많다. 고려 말의 장군들인 이인임과 최영, 그리고 이성계. 셋의 우정은 결국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서로의 등에 칼을 꽂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머나먼 이국 땅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 묻혀 있는 독립군 홍범도 장군. 그 역시 일본군을 상대로 백전백승하는 난세의 영웅이었으나 가장 아끼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음모에 빠져 목숨을 잃을 뻔한 일이 있었다.


학창시절에는 분명 모든 것을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을 친구가 있었을 것이다. 부모님이나 선생님께는 말하지 못하는 비밀을 서로만 공유하며 영원한 우정을 맹세하기도 한다. 아무도 이해해주지 못할 것만 같은 나를 친구만은 이해해주기 때문에 우정은 계속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사회적 유대감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확인하게 된다. 그러면서 사회에 속해 있으므로 안정감을 얻으며 자존감도 쌓여가게 된다.


어린 시절 우정은 더없이 순수하다. 맑고 티 없이 깨끗하다고 할 수 있다. 서로에게 원하는 것 없이 서로를 돕는 데 먼저 나선다. 오히려 주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애쓰기도 한다.


하지만 입시가 현실로 다가오는 학창시절의 어느 순간부터 친구를 사귀는 데 본인만의 가치관이 생기기 시작한다. 아니 부모님의 가치관이 개입하기 시작한다. 성적우선주의 세상에 살고 있다 보니 이 친구가 내 성적에 도움이 될지 아닐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그 다음부터 이어질 우정의 모습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분명히 경험해봤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도 그렇지만 우정 또한 성격이 맞아야 오래간다. 서로에게 공유할 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순간이 가장 재미있었다고…


나 또한 그랬다. 나름 우등생 학창시절을 보내기는 했지만, 분명 나보다 뛰어난 누군가는 있기 마련. 성적 향상이 급했음을 굳이 숨기지 않겠다. 친해지고 싶었다. 아니 친해져야 했다. 이유를 막론하고. 그렇게 나는 속물적으로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밀어붙인 적이 있었다.


매점에서 먹을 것도 사주고, 자주 말도 걸고, 점심 도시락도 같이 나누어 먹고…. 친구가 공부하는 방식이 궁금했고 어떻게 성적을 올리는지도 알고 싶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영화에서나 나올 법하게 놀 거 다 놀고, 잘 거 다 자고, 쉴 거 다 쉬는 친구. 엄마 친구 아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걸 내가 따라할 수는 없는 노릇.


분명 집에서 뭔가 하는 것이 따로 있을 거야 싶었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 나와 별 다를 바가 없었고, 심지어 나보다 공부를 덜 하는 거 같기도 했다. 그렇게 스파이 같은 심정으로 친구를 사귀었던 나는 임무 실패를 깨닫고서 이게 아니구나 싶었다.


그 기간 동안 멀어져버린 친구들은 나의 의도와 행동을 이해했다는 듯 자연스럽게 다시금 받아주었다. 뭔가 내 집에 온 듯한 편안함과 안락함이 느껴졌다. 뭘 해도 재미있고 웃기고 신났다. 서로 좋아하는 것이 비슷하니 이야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당시에는 팝 음악을 다들 좋아해서 시내 레코드점 가서 테이프 사는 것이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당시 5천 원 정도 했던 테이프를 각각 하나 사는데 계산대 앞에서 어찌나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던지.


‘나는 이 가수 살 테니까 넌 저 가수 사. 그럼 내가 다 듣고 빌려줄게.’

‘아냐, 난 안 빌려줄 거야. 너는 네 것 사 그냥.’

‘아, 자식, 쪼잔하기는. 그냥 같이 돌려듣지.’

‘이건 소장용이란 말이야. 뭘 빌려 주냐. 절대 안 된다.’


이런 대화가 이어질 때마다 정말 좋았다. 다른 미사여구를 굳이 덧붙일 필요 없이 그냥 좋았다. 그걸로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난 다시금 친구들과 적이 되어버렸다. 입시가 더욱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순수함이라는 천사가 현실이라는 악마를 이기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지금 생각해보면 현실이 천사였는지도 모른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고 했으니까. 그 선택이 달랐다면 지금의 나는 없어졌을지도 모르니까.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는 나는 내가 정말 좋다. 하지만 그러한 내가 아니라 다른 내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더 좋은 내가 되어 있을 수도 있다. 나는 경험해보지 못했을 그런 나. 하지만 절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지금 이상의 내가 과연 가능할까? 지금도 충분한데. 더 이상 나아갈 필요 없을 만큼 딱 이 만큼이 좋은데.


그 당시 우정이 생각난다. 지금은 그때 두 부류의 우정 중 어느 우정도 남아 있지 않다. 지금의 우정은 더욱 현실적이다. 아니 딱히 우정이라고 명확하게 구분지을 수는 있을까.


‘다음에 시간 되면 밥이나 같이 먹자.’ 이는 딱히 밥 먹지 않아도 상관없으니 그냥 잘 지내냐는 안부 정도일 뿐이다. ‘요새 어떻게 지내. 무슨 일 하고?’ 너무 오랜만에 전화했는데 딱히 할 말은 없고, 뭔가 부탁하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는 모르겠고. ‘결혼은 했고? 결혼 안 하는 게 더 좋아.’ 네가 결혼했는지 안 했는지 별로 관심은 없는데.


왠지 우정은 학창시절에 만들어지는 것만 같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유효기간이 멈춰버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가끔 그때 친구들이 그리워진다. 내가 실수했던 것들을 돌려놓고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내 입장에서 그런 아쉬움을 떠올려보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렇게까지 마음을 먹는 내가 미워지기도 하지만, 나는 지금의 내 상황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으니 굳이 타임머신을 타고 당시로 날아갈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사과는 하고 싶다. 많이 미안했다고. 너희와 함께했던 그 순간이 가장 재미있었다고. 우정이 단지 재미만 쌓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나 소중하다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복잡한 일들 때문에 매일 두통으로 고생하는 내 머릿속 한 켠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을 보니 정말 그리운 추억이긴 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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