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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으로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왠지 그날은 아침 일찍 눈이 떠진 그런 날이었다. 평소와 다르게 루틴에서 벗어나면 두 가지 감정이 교묘하게 교차한다. 뭔가 정말 좋은 일이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정말 안 좋은 일이 있거나. 좋은 일과 안 좋은 일은 겹쳐서 온다고 하지 않은가. 그래서 사람들은 늘 뭔가를 이야기할 때 “좋은 이야기부터 들을래, 아니면 안 좋은 이야기부터 들을래”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계시인가.
화면을 열기에도 이상하게 불길했다. 아니나 다를까. 부고 소식이었다. 그것도 나와 함께 길 위를 종종 뛰었던, 뜨겁다 못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아스팔트 위에서 호흡을 나누며 서로를 응원했던 동생이었다. 그때는 그렇게 서로를 격려했는데 왜 부고 소식을 듣기 전에 나는 전혀 삶에 대한 격려를 전혀 하지 못한 것일까.
서둘러 장례식장을 갔다. 나의 활동 반경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왜?’라는 의문사만 가슴에 새겨두었다.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 것일까. 산 사람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일 텐데. 왜 늘 파이팅이 넘치던 녀석은 그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파이팅을 받지 못했던 것일까. 미안했다. 나라도 자주 파이팅 해주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도 피어올랐다.
장례식장 입구에서 다시 한 번 이름을 확인했다. 정말일까. 동명이인은 아닐까. 나에게 문자가 왔으니 그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다시 또 한 번 살폈다. 맞다. 결혼을 한 동생이라 아내가 나를 맞았고, 아이는 건너편에서 부시럭거리며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었다. 아니다. 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잊고 싶어서 의미 있는 반복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절을 하기 전 영정 사진을 확인했다. 그 얼굴이 있었다. 녀석은 살아생전에 자주 웃었는데, 사진 속 얼굴은 너무나도 무표정했다.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걸 알고서 언젠가 미리 찍어둔 것은 아닐까. 그런 의심이 들 정도로 표정은 서늘했다.
뭔가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겠는가. 그냥 소식만 확인하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아프다 못해 무너져 있는 아내에게 물어볼 것은 없었다. 다만 인사만으로 충분한 것이 아닐까 싶을 뿐이었다. 감정을 굳건히 잡고 있을 터인데 다시금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았다. 무언의 인사를 사이에 두고 눈빛으로 모든 것이 오고갔다. 그렇게 절은 끝났다.
건너 좌식 테이블에 앉아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녀석의 아내는 이쪽으로 건너오지 못하고 있었다. 남편을 잃은 슬픔 너머에는 ‘이 아이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야 하나’ 싶은 현실적인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었을 것이다. 요 며칠 눈가가 마를 날이 없었을 것이다. 아이는 계속 쭈그리고 앉아 아버지를 사진 속으로 넌지시 보다가 다시금 장난감에 몰두했다.
장례식장 밥은 그리 따듯하지 않았다. 보통 다른 곳이라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술이 있었지만 대낮이었기 때문에 취기 오른 기분이 싫어서 마시지 않았다. 70% 가까이 식어버린 밥, 60% 정도 식어버린 육개장, 처음부터 식어 있는 김치만 깨작거리며 입에 욱여넣었다.
파이팅 넘쳤던 녀석이라 영정 사진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라도 파이팅을 해줬어야 하나 싶은 아쉬움이 몰려왔었는데 식어버린 음식들 때문인지 그 감정도 금세 식어버렸다. 이곳을 떠나서 결국에는 당도해버린 그곳에서는 열심히 내달리며 파이팅을 외치라고, 무슨 일로 그리 아파하고 힘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곳에서는 마음 편히 하고 싶은 거 하며 아픔 없이 지내라고 가슴속에 묻어둔 채 그곳을 빠져나왔다.
거의 두 달째 연락이 닿지 않았다. 회사에서도 왜 결근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라고 되뇌기에는 나 스스로가 너무 무책임한 느낌이 들었다. ‘친구’라는 관계로 연결이 되어 있는 사이가 아니던가. 이리저리 수소문해 보았다. 결국 알아냈다. 아픈 것이었다. 어디가 아픈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아픈 것이었다. 녀석은 수술도 받았다. 그런 적이 있어서 재발했나 싶어서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기도 했지만 그것은 아닌 듯싶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이지. 이번에는 그냥 기다려보기로 했다. 괜찮다고, 언젠가 괜찮아지면 다시 연락할 거라고 건너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래, 말하기 싫을 때는 말하지 않게 두는 것도 배려하는 것이지.
두 달하고도 며칠이 흘렀다. 가끔씩 의식적으로 떠올릴 때 외에는 의식의 흐름에 녀석의 생존 상태를 저장해두지 않고 있었다. 역시나 연락은 문자메시지로 왔다. 그것도 일요일 아침 댓바람부터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확인시켜주는 메시지였다. 나는 걱정이 많았다고 넌지시 이야기했다. 굳이 오지랖을 부려 너를 찾느라 애쓰기도 했다고 전했다.
녀석은 말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모든 정상인 것에서 도피해 있었다고. 우리는 늘 그러하듯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그 와중에 굳이 ‘괜찮아 다 잘될 거야’라며 의미 없는 격려는 하지 않았다. 나는 녀석이 얼마나 아팠고, 어디가 아팠고, 어떤 상태인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런 상황에서 ‘힘내 파이팅’을 외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어설픈 파이팅이 얼마나 공허한지 나도 알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나는 학교에서, 집에서, 텔레비전에서 배웠다. 사회적 공감대 속에서 누군가가 힘들면 도와야 한다고, 힘내라고 토닥여줘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살다보니 그러한 토닥임이 생각보다 토닥여지지 않는다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 왠지 <서프라이즈>에 나올 법한 진실 혹은 거짓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어설프게 영혼 없이 힘내라고 했을 때 상대는 분명 안다. 한 명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을 툭 내뱉고 돌아간다는 사실을. ‘예쁘다’는 말도 자꾸 들으면 지겹고 짜증난다고 하는데 이 사람에게 들었던 말을 저 사람에게 또 듣는 거만큼 싫은 것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두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언젠가부터 하게 되었다. 그냥 손이나 잡아주고 따듯하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쓸데없는 행동을 멈추니까 비로소 보이게 되더라는 것이다. 진짜 토닥여줄 거면 같이 펑펑 울어줄 정도가 아니면 뭘 굳이,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만 해도 위로를 해준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다. 상실의 경험이 별로 없으니 모든 것이 낯설었다. 지금의 나 역시 매 순간순간이 처음이기 때문에 여전히 어색하고 부담스럽지만 그 당시만 해도 얼마나 어려웠던가. 누군가를 잃어버렸을 때 어떠한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울어야 한다고 했지만 어떻게 울어야 할지도 몰랐다. 눈물이란 것이 억지로 쥐어짠다고 해서 딱히 흘러넘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병문안을 갈 때도 어떠한 표정을 지으면서 병실 문을 열어야 할지도 참으로 난감했다. 웃으면서? 울면서? 인상을 쓰면서? 살짝 미소 지으면서? 분명한 것은 하나이다.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았을 때 떠오르는 그 표정이 진심인 것이다.
그래, 그 이후로는 진심으로 대해 상대와 마주하기로 했다. 위로도 진심으로 마음이 들면 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굳이 하지 않았다. 또한 상대가 굳이 원하지 않는데 상대를 거짓 배려하며 위로하려 들지도 않았다.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상대 마음이 원하는 대로 그에 맞추어 본능적인 진심으로 아픔과 슬픔, 그리고 상실과 부딪혔다.
“힘들었던 것 잘 알아, 마음껏 울어도 돼.” 그래서 이 말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상황이 이끄는 대로 상황에 맞게 상황이 결정지어주는 대로 사용한다. 나도 모르게 나에게서 튀어나오는 한마디가 되도록 내버려둔 것이다.
어느 영화에서 그랬다.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 간다.’ 그렇다. 나도 ‘그렇게 한 인간이 되어 간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경험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 한 명의 인간으로 완성되어 간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아쉽게도 인간은 죽음과 대면하는 그 순간에 완벽하게 완성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아이러니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픔의 경험이 더 쌓여 간다는 것도 잘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아무리 애를 쓰며 스쳐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고자 발버둥을 쳐도 푸른 봄, 즉 청춘(靑春)으로 되돌릴 수 없음을 잘 안다. 충분히 받아들인다. 되돌릴 수도 없을뿐더러.
당신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힘드니까 위로해줄게’가 아니다. ‘취업도 잘 안 되고, 학자금 대출 갚는 것도 힘들고, 친구도 별로 없어서 외롭고, 가족과는 심적 거리가 멀어지니까 더욱 괴롭고. 그러한 상황을 굳이 내가 잘 안다고 말하진 않을게. 그냥 이 한마디만 할게. 버티면 지나갈 거라고. 그렇게 한 사람의 삶이 꾸역꾸역 채워져 가는 거라고. 버티는 게 이기는 거라고. 괜히 이 악물고 버티려고 애쓰진 말라고. 그걸로 충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