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도 좋아하는 것이 있다

16

by Jeremy

이 글의 제목은 ‘내게도 좋아하는 것이 있다’라고 썼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데 나는 좋아하는 것이 너무 많다. 그렇다면 ‘나는 좋아하는 것이 너무 많다’라고 써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렇게 제목을 쓴 이유는 요즘 젊은이들은 좋아하는 것이 아예 없거나 거의 없거나 하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봐서 파이팅해주고 싶어서 이런 제목을 굳이 골랐다.


그런데 최근에는 젊은 세대에게 파이팅해주는 것이 두렵다. “아저씨가 뭐 안다고 나에게 파이팅해준다는 거예요?”라고 말할까봐 말이다. 나 역시 금수저 아니 최소한 동수저 정도였다면 그러한 파이팅이 전혀 먹히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서울상경 고생스토리를 풀어내자면 대하소설 10권이요, 이상문학상을 넘어 맨부커상을 지나 노벨문학상은 따놓은 당상일 것이다. 그러니 그런 말 좀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꼰대같이 않을 정도로만 해도 괜찮지 않을까? 좋아하는 것이 없다는 것은 사실 내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괴로운 일이고 살 이유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을 공책에 써보려고 평소 좋아하는 노트를 경건한 마음으로 꺼내서 좋아하는 연필을 좋아하는 연필깎이에 서걱서걱 소리를 내어가며 깎았다. 좋아하는 것 1번. 음악. 음악은 좋아하다 못해 ‘Music is My Life’라고 외쳐도 모자람이 없다. 아니 오히려 부족하다. 음악이 좋아서 뮤지컬배우가 되었고, 음악이 좋아서 콘트라베이스, 일렉베이스, 클라리넷, 가야금, 우쿨렐레, 칼림바까지 연주하고 좋아하고 있다.


음악이 좋아서 밥은 한 끼 정도 걸러도 발매 당일에 맞춰 CD나 테이프를 사고자 아침 일찍부터 레코드점이 문을 열 때를 초조한 마음에 기다린 적이 있었다. 가수의 싸인CD를 받거나 브로마이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트워크로 가득한 마이클 잭슨나 헤비한 기타 사운드가 폭발할 것만 같은 본 조비의 브로마이드는 너무 아끼다가 벽에는 붙여보지도 못하고 결국 어디 갔는지 찾을 수조차 없어져버렸다. 그래도 좋았다, 좋았다, 좋았다.


내가 음악을 얼마나 좋아하는가 하면 가끔씩 외출할 때 집안에 음악 공기가 가득했으면 하는 마음에 라디오나 CD플레이어를 틀어놓곤 했다. 그러면 음악에서 발산되는 수많은 음표와 쉼표와 높은음자리표나 낮은음자리표가 내 방을 둥둥 떠다닐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렇게 믿어서일까, 외출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렇게나 마음이 편안할 수가 없다. 나 역시 방안에서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음악이 좋아서 기도하고, 기도하고, 믿고 또 믿다 보니 작사, 작곡도 하고 라디오에서 음악을 소개하는 일도 해보고 무대에서 노래도 부르고 연주도 하고… 그러한 삶을 종종 누리는 것이다. 정말로 믿는 만큼 이루어지는 것일까? 내가 의도한 대로 끌어당김의 법칙이 나를 전 우주를 향해 끌어당겨주는 것일까?




춤도 마찬가지였다. 이별을 잊고 싶어서 필연을 가장한 우연처럼 시작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이별 따위는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누구와 이별한 것이었지? 그냥 춤출 때 난 전기에 감전된 듯 더없이 짜릿하고 무대의 주인공이 된 듯 날아다녔다. 물론 배우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공연도 했고, 강사로도 활동했다.


나는 분명히 공과대학교를 졸업했다. 비행기와 우주선을 공부했다. 그런데 춤을 췄다. 비행기를 타고 지방 공연을 간 적은 있어도, 우주선을 모티브로 댄스 안무를 짜긴 했지만 공대생이 댄스라니. 가끔씩 생각할 때마다 헛웃음이 지어지곤 한다. 부모님은 얼마나 어이가 없으셨을까 싶다.


그래도 어쩌겠나. 좋아죽겠는데. 그냥 좋은 것도 아니고 좋아죽겠는데. 나는 재즈댄스도 했고, 현대무용도 했고, 발레도 했고, 살사와 탱고도 배웠고, 차차도 추고, 룸바도 추고 그랬다. 그땐 그냥 원 없이 좋아서 그랬다. 그러다 보니 먹고 살 길이 만들어졌다.



잔소리라고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사실 이렇게 좋아하는 것만 끝도 없이 하려고 애쓰는 것이 맞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고민도 많이 했다.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누군가는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고통일 정도로 힘들어하는데 왠지 나만 미소 지으며 행복을 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그런데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오직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고 서울로 상경했을 때 정말 통장뿐 아니라 주머니에는 무일푼이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까지 도착했다. 오직 나의 힘으로.


태풍 앞에 촛불 같은 심정으로 하루하루 버텨냈던 기억이 난다. 절대 좌절하지 않고 한 번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문과를 진학하고 싶었지만 공대에 입학한 나에게 선택은 삶 그 자체였다.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을 거라 스스로를 다독였고,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을 것이라 나를 믿었다. 그렇게 얻은 삶이라 더욱 값어치가 있고 감사하기에 충분히 누리고 싶을 뿐이다. 누구에게도 피해 주지 않는 울타리 안에서.




누군가는 인간관계뿐 아니라 연줄이나 라인이 중요하다며 그러한 것에 많이 신경 쓰고 노력한다. 그런데 나는 ‘인간관계는 좁고 굵고 적게’를 추구하는지라 가끔씩 인맥의 달인들이 휴대폰에 5만 개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다고 자랑할 때마다 그다지 가슴에도 영혼에도 와 닿지 않는다. 그건 그들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애정 표현이니 그들의 삶은 그들의 것으로 남겨주는 편이다. 내 삶을 영위하기에도 바쁘니까 말이다.


누군가의 즐거움과 행복은 결코 내가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마치 헤어진 연인이나 부부의 일을 누구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왈가왈부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단지 내 것은 내가 챙기면 그만이다. 그것이 바로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준 내 삶의 방식이다. 그러니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것 없이 산다는 말을 들었을 때 굳이 한마디 거드는 것은 괜히 오지랖일 수 있다.


그런데 너무 안타까워서 꼭 이 한마디만 하고 싶다. 제발 좋아하는 것을 한 가지는 찾으라고. 아니 찾아내라고. 그걸 붙들고서라도 앞으로의 삶은 충분히 충성하게 만들어나갔으면 싶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희망의 꽃은 피어나고, 진흙투성이인 연못에서도 아름다운 연꽃은 자신이 맡은 바 임무를 다하며 살아간다. 그러니 스스로를 암흑 속에만 밀어 넣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그 암흑에서 성냥개비 하나 꺼내어 불을 붙이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것 그 하나가 나를 붙들고 나를 이끌고 나를 살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텔레비전만 보더라도, 게임만 하더라도, 놀러만 다니더라도 잘못되었다고 절대 말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선택한 삶이기 때문이다. 텔레비전만 좋아하다가 예능PD가 된 사람도 있고, 게임만 좋아하다가 프로게이머가 된 사람도 있다. 놀러 다니는 것만 좋아하다가 파티플래너가 된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다만 뭔가 방법을 고민해볼 필요도 있다고 조심스레 한마디 거들고 싶다. 단순히 그 행동만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것을 좋아했을 때, 아니 그러한 것만 좋아할 때 어떻게 풍성한 내 삶으로 만들 수 있을지를 말이다. 과장된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징검다리를 건너다가 다리의 필요성을 느껴 다리만 파고들다가 그쪽 분야에 전문가가 된 사람이 없다는 보장도 없다.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힘이 난다. 이유가 떠오른다. 그 이유라고 하는 동아줄을 붙들고서라도 ‘푸른 봄’의 삶을 이끌어 갔으면 한다. 당신은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 있는 사람이자, 그렇게 살고자 태어난 사람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태풍 앞에 촛불은 어떻게 안 꺼질 수가 있느냐고? 당연히 나만의 방식으로 촛불을 켰으니까. 분위기 낼 때 쓰는, 건전지 넣어서 사용하는 촛불이니까. 물론 촛불이니까 틀린 것도 아니요, 잘못된 것도 아니다. 오직 나를 위해 이 정도 유머를 담아낸 촛불이라면 누구라도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심지어 태풍 또한 이해해주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이러한 유머도 내가 좋아하는 것 중에 하나다. 긍정적인 마인드가 여기까지 이끌어주었을 테니까.


당신에게 잔소리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물론 누군가는 그 자체도 잔소리라 평가절하할 수도 있겠지만.) 다만 내 손을 뻗어서 당신의 손을 잡아주고 싶을 뿐이다. (손잡아 줄 필요가 없다면 어쩔 수 없지만.) 누군가 내 손을 잡아주었을 때 그만큼 고마운 일이 있을까 싶은 감동은 언젠가 분명 찾아온다.




이전 05화“힘들었던 거 잘 알아, 마음껏 울어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