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를 이겨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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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동시대에 함께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운동을 하고, 생각과 고찰을 나누는 많은 학생들 중 오직 의지에 따라, 자신이 결정을 내리고서 학과를 선택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우선 공부부터 열심히 하고나서, 부모님과 선생님과 적당히 타협을 한 후 대학에 입학한다. 학과보다 중요한 학교. 무엇을 배우는지 도무지 관심이 없고, 궁금하지도 않은 그곳으로.


나는 마흔이 훌쩍 넘었지만, 음악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베토벤, 모차르트, 쇼팽,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드뷔시 못지않게 불타오른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겠지만, 여하튼 음악 대학원에 입학하려고 최근 고군분투 중이다. 내가 음악 대학원에 콘트라베이스로 입학한다면 이건 대한민국 음악 역사에, 아니 너무 거창하니 그냥 뮤직 신(music scene)에 길이 남을 ‘최고의 순간’ 1위에 오르겠지만, 여하튼 그렇게 그냥저냥 차근차근 준비 중이다. (지난주에는 어깨가 많이 아프다는 이유로 레슨도 다 빼먹었는데, 정말 가능은 할는지.)


물론 눈에서, 코에서, 귀에서, 손가락에서, 발가락에서, 머리에서 피가 나도록 연습해야 하는데 연습보다 음악 감상에 좀 더 열심이긴 하다. 나보다 선생님이 더 열심이라 괜히 뜨끔 미안하기도 하다.


그런데 음악 대학원을 가려고 마음먹고서 가장 먼저 왜 서울대를 떠올렸는지 알 수 없었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왜 하버드부터 떠오르는지도 알 수 없었다. 너무나 정형화되어 있고 관습적으로 떠올린 거라고는 하지만, 대학 아니 대학원까지 확장해도 딱 그렇게 익숙해져 있었다.


사실 이렇게 저렇게 조금만 찾아봐도, 그 대학들에 내가 공부하고 싶은 학과가 있는지도 정확하지 않은데 말이다. 다시 나는 교수진을 확인하고, 학교 커리큘럼을 찾아보고, 주위 전공자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내가 혹시 주위의 시선에 민감해지기 시작한 것일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고백하건데, 지금 이 순간 가톨릭 신부님께 고해성사하는 마음보다 더욱 솔직하고도 경건하게 말하겠는데, 내게 지방대 콤플렉스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은 아닌지도 모른다고 하는 것도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 있다. 분명히 있다.


부산에서 대학 졸업 때까지 살다가 서울 왔을 때 느꼈던 그 심리적 학벌 간극을 여전히 느끼고 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 못지않게 그렇게 놀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요, 괜히 SKY대학이나 해외 유학파들이 학교 이야기할 때 나도 모르게 흠칫 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음악 대학원 입학을 본격적으로 고민했을 때, 일순간 서울대부터 떠올렸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 가고 싶었다. 가지 못한 한도 분명 있었다. 나는 분명 갈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도 넘쳤다. 가족과 학교를 포함한 주위에서도 숱하게 이야기했으니까.


하지만 생각해 보건데, 다시 한 번 고민해 보건데, 사실 내게는 학교에 대한 불만이나 콤플렉스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학과에 대한 불만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누가 봐도 국문과나 영문과, 아니면 음대 출신일 것만 같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하고 철석같이 믿는다. 내가 생각해도 그런 거 같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삶과 미래에 대한 슬럼프가 찾아왔다. 공대라니…. ‘내가 이곳에 왜 들어온 거지. 여기서 뭘 배우려고 하는 거지’ 싶은 정신적인 방황을 곧바로 겪게 되었다. 수업은 힘들었고, 나는 아웃사이더로 방황하기 시작했다. 슬럼프가 영차영차 몰려왔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별을 통해, 뮤지컬을 통해 예술을 깨닫는 인생의 쓸모를 만나게 되었고, 문과 마인드가 짙게 피어나는 공대생인 나는 예술인의 삶을 누리게 되었으며, 무대와 방송, 감동과 감성의 경계선을 숱하게 넘나들며 지금까지 살아내고 있다.


물론 통장에 일정한 숫자가 채워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행복지수는 언제나 일정하게, 아니 더 했으면 더 했지, 줄어들진 않았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국민들의 행복지수를 나한테 감히 비교하지 말길 바란다. 아니, 부탄 국민의 행복지수도 나랑 비교하지 말기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대학에 입학하고서 슬럼프와 우울증, 공황장애로 고생하는 20대를 많이 보았다. 입학과 동시에 휴학하는 친구들도 많이 보았다. ‘나는 이곳에 속해 있을 수 없어. 이 공부를 좋아하지도 않고 하고 싶지도 않은데 왜 여기에 온 거지’ 하는 갈등과 번민 속에서 끝도 없이 흔들리기만 하는 모습도 많이 보았다.


그래, 그렇다면 더 늦기 전에 빨리 다른 길 위를 걸어야 한다. 저쪽 너머에 분명 절벽이 있을 것인데 그래도 꾸역꾸역 그 길로 향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면 얼마나 슬프고 아플까. 얼른 옆길로 새야 한다. 그렇다. 이럴 때 옆길로 새야 한다. 지름길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진흙길이어서 그 길 위를 걷는 것조차 괴롭더라도 상관없다.


분명 나는 내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 길도 아닌 길을 걸었다가는 제아무리 그 길이 꽃길 같아 보일지라도 결국에 그 끝은 엔딩이다. 벚꽃엔딩도 아닌 그냥 엔딩이다. 주위에서 꽃잎을 뿌려주고 박수를 쳐주고 응원을 해준다 하더라도 나는 분명 내 길을 걸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매일 내 길을 걷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남들이 만들어준 길이 아니라 내 삶에 어울리는 내 길 말이다. 그리고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아무리 남들이 봤을 때 별로라 하더라도 내가 걸어야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학교에 대한 콤플렉스가 컸다기보다 4년간 내가 해야 할 공부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괜히 학교 탓을 하며 콤플렉스를 쌓아간 것은 아닐까. 그 4년간 등록금을 꼬박꼬박 내며,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생해서 번 돈으로 ‘내가 해야 할’ 공부를 못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아니 그러지 않으려 한다. 그것도 결국 나의 선택이었으니까. 부모님을, 선생님을 설득하지 못한 나였으니까. 그러니 이 책을 읽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를 조금이라도 빨리 부모님과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고. 더 늦기 전에 아니 조금이라도 늦기 전에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어야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우리가 가진 능력보다 진정한 우리를 훨씬 잘 보여주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 J. K. 롤링이 남긴 말이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선택의 중요성을 잘 알았을 것이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 누구도 탓하지 않고 자신만의 글을 썼기에 지금의 자리에 당도할 수 있지 않았을까.


‘Just do it right now’라고 이야기해주겠다. 해야 할 그것이 무엇인지 난 궁금하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것만은 이야기할 수 있다. 지금 바로 하기를. 그렇지 않으면 분명히 후회한다. 그리고 그 길은 내 길이 아니기 때문에 제아무리 꽃길이어도 그 길 위를 걷는 것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슬럼프를 이겨내는 비법? 내가 가야 할 길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얼른 찾고 실천하면 된다. 많이 힘든 거 안다. 굳이 그 길로 가야 하나 싶은 의구심도 들 것이다. 하지만 분명 언젠가는 후회한다. 바로 그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슬럼프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자 선택을 한다.


지금 당장 노트를 펼쳐보자. 볼펜이든 연필이든 손에 쥐고 써내려 가보자.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지금 당장 할 수 없을지라도 언젠가는 그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걸어야만 한다는 다짐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그렇게, 그렇게 나는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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